장애인 현실과 동떨어진 광고 만든 SK텔레콤

삼성, KT, SK텔레콤···
대기업이 반복하는 장애인 차별 광고의 역사
기업은 장애인을 시장 속 소비자로 바라봐야

하민지 승인 2020.08.24 07:00 | 최종 수정 2020.08.24 15:15 의견 4
SK텔레콤이 만든 광고의 한 장면이다. 광고 주인공 장온유군과 전설 속 동물 해치가 함께 창덕궁을 관람하고 있다. 장온유군은 수동 휠체어에 앉아 있다. 해치는 SK텔레콤이 만든 증강현실 서비스 속에서 구현된 캐릭터다. 이 장면은 상상 속 장면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 SK테레콤


[AP신문=하민지 기자] 기업이 기술을 활용해 사람이 겪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건 좋은 일이다. 기업이 인류의 더 나은 삶에 이바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른 채로 기술을 만들고, 그 기술을 홍보하는 광고를 만든다면 소비자는 공감하기 어렵다.

지난 2일에 공개된 SK텔레콤의 '창덕ARirang' 광고가 그렇다. 광고에는 휠체어 탄 장애인이 나오지만 전문가는 이 광고가 휠체어 탄 장애인의 삶을 잘 모른 채 만들어진 광고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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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에는 장온유군이 나온다. 온유군은 휠체어 탄 장애인이다. 친구들과 함께 창덕궁에 놀러갔지만 휠체어 바퀴가 턱에 걸려서 창덕궁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SK텔레콤은 광고에서 이런 온유군을 위해 AR(증강현실)을 이용한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스마트폰으로 창덕궁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서비스다. 아리랑의 영문명 'arirang'에서 앞 두 글자 AR을 대문자로 표기한 것도 이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회장, 장애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최근 '난치의 상상력'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펴낸 안희제 작가는 이 광고가 "기술의 혜택을 받는 장애인의 모습을 따뜻한 모습으로 포장하고 장애인의 현실은 무시하는 대기업의 유구한 전통을 그대로 이어간 광고"라고 비판했다.

안 작가는 20일 AP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광고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서 설명했다.

온유군보다 앞서서 창덕궁 안으로 뛰어가는 온유군의 친구들. 그 중 한 명이 온유군을 향해 뒤돌아 보며 "온유야, 빨리 와"라고 손짓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SK텔레콤


1. 비장애인이 휠체어 탄 장애인을 대하는 모습이 비현실적이다

광고를 보면 온유군의 친구들이 휠체어를 탄 온유군은 내버려 두고 먼저 창덕궁 안으로 뛰어간다. 뒤쫓아 오는 온유군에게 "온유야, 빨리 와!"라고 말한다. 뛰는 비장애인과 휠체어 탄 온유군이 명확히 대비된다.

안 작가는 "비장애인 친구들이 휠체어 타는 친구랑 어떻게 같이 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따뜻함'을 강조하고 싶어서 비장애인 친구들의 무지를 과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라면 휠체어를 탄 사람과 타지 않은 사람이 같은 속도로 함께 갈 확률이 높다. 또한 친구들이 같이, 같은 장소에 나들이를 간 것이기 때문에 동행한 사람과 같이 다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속도 차이부터 보여준 광고의 도입부는 휠체어 탄 장애인은 언제나 느리다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온유군 휠체어 앞 바퀴가 턱에 걸리면서 온유군이 창덕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턱의 높이는 앞바퀴 높이의 절반 정도 된다. 앞바퀴는 성인 손바닥 크기 정도 된다. 사진 SK텔레콤


2. 그 정도 턱은 휠체어가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

휠체어 바퀴가 턱에 걸리자 온유군은 이내 포기하고 "난 안 봐도 괜찮아"라고 친구들에게 말한다.

안 작가는 이 장면 또한 현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일단 휠체어를 들어줄 활동지원사가 광고에 등장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고 했다. 게다가 "친구들이 오만상을 다 쓰면서 휠체어를 들어주다 실패한다. 이건 장애인을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광고에 나온 그 정도 턱이면 뒷바퀴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안 작가는 "광고에 나온 휠체어는 토도 드라이브(수동 휠체어를 전동 휠체어처럼 쓸 수 있게 하는 제품)를 부착한 수동 휠체어다. 수동 휠체어는 그렇게 여러 명이 힘들게 들 정도로 무겁지 않다. 활동지원사가 함께 있으면 뒷바퀴로도 충분히 넘어갈 수 있고 앞바퀴도 살짝만 들면 올라갈 수 있는 정도의 높이의 턱인데, 어린이들만 등장시켜서 휠체어를 들게 하는 장면을 넣은 건 '휠체어는 힘든 것'을 강조하는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다양한 리프트의 모습이 담긴 사진 세 장이 있다. 첫 번째는 레일처럼 휠체어 아래를 받쳐서, 계단을 쉽게 올라 가게 하는 리프트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작은 엘리베이터 같은 리프트다. 사진 위쪽부터 보일러TV, 비에프코리아, 신우프론티어마케팅


3. 장애인 접근성보다 기술이 먼저라니

SK텔레콤은 지난 17일 AP신문과의 통화에서 "턱을 SK텔레콤이 없앨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문화재청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고 문화재청은 실제로 노력하고 있다. 휠체어 이용자나 유아차를 끄는 사람이 창덕궁을 편하게 관람하게 하기 위해 이 서비스를 만든 건데 광고에 턱이 나왔다고 해서 SK텔레콤에 화를 낼 순 없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이번 서비스를 만들면서, AR 속 해치가 휠체어나 유아차가 다닐 수 있는 경로로만 안내하는 기능을 넣었다. 문화재청은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 창덕궁 주요 길목에 경사로를 만들었다.

SK텔레콤은 "문화재청도 노력하고 있지만 어려운 문제도 있다. 어떤 계단은 25미터 이상의 슬로프(경사로)를 설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안희제 작가는 SK텔레콤의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했다. 안 작가는 "경사로만 대안으로 생각하면 그 말은 맞다. 하지만 수직형 리프트라는 대안도 있다. 수직형 리프트는 굉장히 작은 엘리베이터 같은 거다. 이동식 수직형 리프트를 개발하면 휠체어 탄 장애인도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작가는 연세대학교 건물을 예로 들었다. 안 작가는 "우리 학교의 일부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설치를 못 했지만 오랜 시간 협의한 끝에 설치했다. SK텔레콤 말처럼 창덕궁이 문화재라 리프트를 설치하는 게 어려울 수 있지만 바퀴가 달린 이동식 리프트를 설치하면 문화재가 훼손될 이유가 전혀 없다. 계단도 올라갈 수 있고 경사로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기술과 광고는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졌다고 안 작가는 지적한다. 그는 "온유군이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SK텔레콤은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만들어 광고로 홍보했다. 턱도, 계단도 그대로 놔두면서 휠체어 사용자에게 스마트폰을 켜게 한다. 이런 광고는 '문제는 당신이 타고 있는 휠체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라고 말했다.

광고는 창덕궁을 관람하지 못하는 온유군을 위해 '조금 다른 답'을 찾았다며 AR 기술을 홍보한다. 그리고 "기술은 단 한 명을 위해 오늘도 더 좋은 답을 찾아갑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광고는 마무리된다.

안 작가는 "물리적 접근성은 왜 더 좋은 법이 아닌가. 경사로, 리프트, 활동지원사보다 기술이 더 좋은 답이라니. 온유군이 직접 창덕궁을 관람하는 것만큼 제일 좋은 건 없다. 그런데 광고는 온유군을 친구들과 창덕궁을 함께 보기 힘든 사람처럼 그렸다"고 지적했다.

안 작가는 광고 마지막에 온유군의 목소리로 "모든 사람이 무엇이든 볼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도록"이라고 내레이션 처리한 것은 "무책임의 끝"이라고 이야기했다. 안 작가는 "기술의 혜택을 받는 장애인의 목소리로 기술을 포장했다. 장애인 접근성은 가볍게 무시했다. 자막도 없고 수어 영상도 없다"고 비판했다.

장애인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기술이 따뜻함으로만 포장되는 광고는 여럿 있어왔다. 사진 두 장 중 첫 번째 사진은 KT 광고 장면이다. KT가 인공지능 기술로 청각 장애인의 음성을 복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삼성 광고 '릴루미노'의 한 장면이다. 배우 한지민이 릴루미노 글래스를 손에 들고 있다. 사진 KT, 삼성


광고는 장애인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감동은 비장애인이 받고···
장애인을 고객으로 봐줬으면

한국 기업 광고에서 장애인은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기업은 기술로 장애인에게 따뜻한 도움을 주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인에 관한 차별적인 시선을 재생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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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사례로는 KT 광고가 있다. 지난 3월에 공개된 광고에는 KT가 기가지니 AI(인공지능) 음성 합성 기술로 청각 장애인에게 목소리를 선물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서울농아청년회는 "목소리를 잃었다는 표현이 잘못됐다. 청각 장애인은 수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광고는 오직 목소리, 즉 '구어'만을 유일한 소통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 수어 그 자체를 온전한 소통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는 관점에서 (광고가) 만들어졌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안희제 작가는 삼성 시각장애인용 앱 '릴루미노' 광고를 예로 들었다. 2018년에 공개된 이 광고는 한 편의 단편영화처럼 제작됐다. 배우 한지민과 박형식이 열연해 크게 화제 됐다. 광고는 세계 유수의 광고제를 휩쓸기도 했다.

안 작가는 "릴루미노 글래스(앱을 사용할 때 착용하는 것)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다. 게다가 저시력 장애인만 사용할 수 있고 전맹 시각 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광고는 이 기술의 혜택을 입은 장애인의 감동 스토리만 강조했다"고 말했다. 광고는 장애인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데 감동은 비장애인이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기업이 장애인이 등장하는 광고를 만들 때 어떤 점을 신경 쓰면 좋겠냐는 질문에 안 작가는 "장애인을 고객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 작가는 "장애인은 광고 속에서 기술의 혜택을 보는 사람, 기업의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만 등장한다. 장애인이 시장 속 소비자로 등장한 적은 없다. 기업은 '우리 이렇게 멋진 일 해'라는 메시지만 강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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