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오영선 기자] 서울YWCA가 지난 8월 20일 예능ㆍ오락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인기 예능ㆍ오락 프로그램 12개를 대상으로 모니터링한 조사 결과 예능 속 차별적인 장면이 다수 발견됐다.

출연자 성비에 따른 성별 역할을 분석한 표. 자료 서울YWCA

예능ㆍ오락 프로그램의 전체 출연자 성비는 여성 35.9%(140명), 남성 64.1%(250명)로 남성이 여성보다 1.7배 이상 많이 등장했다.

고정출연자와 보조출연자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명확해진다.

고정출연자의 경우 여성이 14.2%(20명), 남성이 85.8%(121명) 등장해 남성이 6배 더 많이 등장했다.

서울YWCA는 "주진행자와 고정출연자가 예능을 이끄는 진행자의 위치임을 고려하면, 2020년 6월 한국 예능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임을 알 수 있다"며 "역할에서의 성비 불균형은 수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인 남성성/여성성 스테레오타입(고정관념)과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성평등/성차별적 내용을 정리한 표. 자료 서울 YWCA

성평등적 내용은 3건, 성차별적 내용은 26건으로 성평등적 내용보다 성차별적 내용이 약 8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차별적 내용에는 젠더(성별) 고정관념을 조장한 사례가 15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외모 평가, 성희롱ㆍ성폭력 정당화 등이 뒤를 이었다.

'남자다움' 고정관념 고착화

젠더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사례 중 정상적 남성성이 규범으로 강조된 사례는 7건으로 전체 성차별 사례 중 약 27%를 차지했다.

남성성의 틀을 정하고 그 틀을 벗어나는 사람에 대해 비하하거나, 특정 남성성을 찬양(근육과 체격 강조) 하고 '울지 않는다', '가장이어야 한다' 등 정상적 남성성을 강조한 사례다.

6월 11일 방영된 TV조선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 사랑의 콜센터> 11화 갈무리

특히 TV조선의 사랑의 콜센터는 성차별적 내용 26건 중 6건이 젠더 고정관념을 고착화 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의 콜센터 11화는 '나는 남자다잉'이라는 주제로 프로그램 내내 출연진들 모두 '상남자' 콘셉트였다.

서울 YWCA는 이 회차에서 남자다움을 끊임없이 강조해 성별에 따라 특정한 속성을 갖는다고 여기는 잘못된 젠더 고정관념을 고착화했다고 설명했다.

여성성 강요

6월 7일 방영된 SBS <런닝맨> 506화 갈무리

여성 게스트와 여성 고정 출연자에게 애교를 요구하고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서울 YWCA는 "애교를 여성성의 정점으로 간주하고 런닝맨 하에서 런닝맨 여성 멤버들의 애교는 애교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여성성 규범의 문제"라며 성차별적 요인을 짚었다.

이어 "성인 여성에게 유아적인 연약함을 부각하도록 하고, 그것이 매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다. 여성 출연진들에 대한 애교 강요가 이제 더 예능에서 그려지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성애적 로맨스만 강조, 상상력의 부재

여성과 남성이 붙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연인 사이로 단정시켜 곤란한 경우를 겪기도 한다. 예능에서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반복된다.

6월 3일 방영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120회
남성 출연자와 여성 출연자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뿐인데 갑자기 자막과 연출이 둘의 관계를 '이성애적 로맨스 관계'로 설정하는 장면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예능에 대해 서울 YWCA는 "여성과 남성 간의 관계 기본값을 '이성애적 연애'의 기준에서 보는 것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발생하는 다양한 관계의 모습들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이성애적 연애 관계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다양한 연애 관계와 감정의 상태를 비정상적으로 규정하고 낙인찍을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성차별적 예능 속에서 빛난 장면

성차별적인 프로그램 안에서 성평등한 사례로 선정된 장면도 있다.

젠더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예능이 있는 반면, '여자가', '남자가'라는 성차별적인 발화에서 벗어나 '누구나'를 강조한 사례도 있다.

왼쪽 6월 17일 방영된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 3> 12회

<하트시그널 시즌 3>에서 남성 출연자가 "남자들은 99% 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을 못 한다"는 말을 하자 여성 출연자가 "아니 그런데 그건 여자도 그래요"라고 바로잡는다.

서울 YWCA는 "자막 또한 특정 성별을 꼬집지 않고 출연자에게 모두 책임을 지우지 않은 채 대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한 유이는 과거 신체를 평가당해 일어났던 일들을 언급하며 '논란거리가 되어버린 내 몸’처럼 느껴졌다고 이야기하고 다른 여성 출연자 또한 외모 평가 때문에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여성 연예인으로서 쉽게 외모 평가와 비난을 받는 문제의식을 짚은 성평등한 사례다.

서울 YWCA는 보고서를 내며 한 희극인이 '뭐 이렇게 안 된다는 게 많아! 손발 다 묶어놓고 어떻게 웃기라는 거야'라는 발언을 짚어 "그동안 우리 사회 개그가 누군가를 향한 비하와 차별은 아니었는지, 왜 그 '손발'을 사용하는 데 불편하거나 어렵지 않았던가를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주진행자와 고정출연자들 사이 6~7배에 달하는 성비 불균형을 언급하며 "여성 희극인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할 필요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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