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김은지 기자] 남성 모델이 여성용품 광고에 나오는 것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주요 소비자인 여성들을 공략하기 위해 광고가 남성 모델을 어떻게 이용해왔을까. 동시에 여성의 주체성을 지워버린 여성용품 광고는 무엇이 있었나. 처음 여성 속옷 광고에 남성 모델이 등장했던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수동적이고 예쁘기만 한 광고 속 여성

2011년, 인기 배우 소지섭은 속옷 브랜드 '비비안'의 모델로 발탁됐다. 소지섭은 화면을 바라보며 "넌 뭘 입어도 예뻐. 내가 널 지켜주니까" 라는 말을 건넨다. 무엇을 입든 상관없다면 비비안 속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걸까 의문이 드는 순간 대뜸 지켜준다고까지 한다. 개연성이라고는 없다.

소지섭이 내 여자는 비비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 비비안 광고 캡처

하지만 잘생긴 남자가 여성 소비자를 꾀어내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광고의 목적은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문제는 광고에서 제품 선택의 주체가 여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은 속옷을 선택할 때도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졸지에 보호를 받고, 예쁘기만 한 여성 소비자가 된 것이다.

이어 메인 카피인 "내 여자는 비비안"을 남성 모델이 아주 멋있게 외친다. "나는 비비안"이 아닌, "내 여자는 비비안"이다. 여성이 속옷의 기능이나 원하는 디자인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남성이 선택한 속옷을 '내 여자'에게 권유하는 모습이다.

이 광고는 당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새롭다', '설렌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고, 심지어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깼다는 평가도 받았다. 여성 속옷 광고에 여성 모델만 쓸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 있는 일이니, 파격적인 건 사실이었다.

'설렘' 감정에만 집중, 여자는 감정으로 제품을 선택한다?

파격적인 반응을 끌어낸 비비안은, 계속해서 남성 모델을 활용한다. 2014년 8월에는 조인성을 모델로 발탁했다. 메인카피는 변화했다. '내 여자는 비비안'에서 '비비안의 남자'로 주체가 여성으로 옮겨갔다. 그래, '선택한 속옷이 비비안이라면 옵션으로 비비안의 남자가 따라오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광고 영상에서 또 개연성이라고는 없는 말을 던진다.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라고. 안아보면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 알 수 있다는 걸까. 브래지어 감별사라도 되는걸까. 도무지 제품의 설명이라고는 없고, 남녀 간의 설렘만을 강조하기만 한다. 여성 소비자의 감성에만 호소하고 있다.

비비안 광고 속 조인성, 좋은 느낌 광고 속 박서준. 사진 비비안, 좋은느낌 광고 영상 캡처

이렇게 설렘의 감정만 앞세우는 여성용품 광고는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유한킴벌리 '좋은 느낌'이 2015년 배우 박서준을 모델로 발탁했다. 그리고 그 모델을 '순면남'이라 불렀다.

광고 영상은 1인칭 시점으로, 마치 박서준과 데이트를 하는 듯한 연출이다. 영상에서 순면남은 "기분 좀 나아졌냐"고 묻는다. 생리 기간에 생리통이나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해 기분이 가라앉는 현상을 이용했다. 잘생긴 남자가 '나'를 보살펴주는 상황의 설렘을 주지만, 여성이 생리 기간에 실제로 겪는 고통은 쏙 빼버렸다. 여성이라면 다 알겠지만, 잘생긴 남자가 기분을 풀어준다고 기분이 좋아질 수 없다.

마치 광고는 생리 기간의 고통이 가벼운 것인마냥 표현했다. 정신적 고통을 투정부리는 정도로 축소시켰다. 여성 소비자의 정확한 이해 없이 오직 '설렘'의 감정에만 집중했다.

변화는 없나? 반복되는 남성중심 광고

감정을 앞세워 여성 소비자를 일명 '호구'로 보거나, 선택권을 뺏어 주체적이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리는 광고는 줄어들고 있다.

여성 모델이 당당한 모습으로 걷고 있다. 사진 비비안 광고 영상 캡처

속옷 광고에 최초 남성 모델 발탁의 타이틀을 거머쥔 비비안은 2016년 배우 하지원을 모델로 발탁,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광고에 담았다.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함에 따라 광고도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광고도 있다. 인기 연예인 차은우가 생리대 광고에서 '남자친구'라 불리는 것처럼 말이다. 생리대 브랜드 '시크릿데이'는 줄곧 인기 남자 연예인을 홍보 모델로 발탁, '남자친구'라고 불렀다. 배우 서강준, 가수 에릭남을 거쳐 2017년 인기 그룹 아스트로를 모델로 발탁했다.

잘생긴 남자 모델 차은우가 꽃을 들고 있다. 사진 시크릿데이 광고 영상

2018년에는 '꽃을 닮은 너'라는 제목의 광고 영상이 공개됐다. '뭘 입어도 예뻐'라고 말하는 2011년의 비비안 광고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또다시 여성 소비자에게 '예쁘다'는 프레임을 씌우며 광고를 이어나가고 있다. 두 광고 사이에 7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결국 또 똑같은 방식의 광고와 마케팅이다.

말했듯이, 남성 모델을 여성 용품 광고에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여성 소비자를 여성용품에서도 주체가 아닌 듯 그려내는 광고는 더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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