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787-9 = ©대한항공]

[AP신문 = 김상준 기자] 싱가포르와 홍콩의 항공 당국이 유럽연합(EU)의 항공 슬롯 정책에 대해 보복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한국 역시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17일(현지시간) 싱가포르와 홍콩 항공 당국이 EU 슬롯 정책과 마찬가지로 유럽 항공사에 대해 유사 조항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공항공사는 관련 내용에 대해 언급을 꺼려했지만, 대한항공(003490) 측이 해당 조항들을 확인해줬다고 전했다. 아울러 대한항공과 대만의 차이나항공은 EU 규정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8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번 겨울 시즌인 올 10월 말부터 내년 3월 말까지 운영될 민간 상업 항공기 이착륙 슬롯 운영 방침을 발표했다. 방침에 따르면, EU 내 공항을 운항하는 항공사는 보유하고 있는 슬롯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도록 했다. 만일 배분받은 항공편의 절반을 띄우지 않은 항공사의 경우 내년부터 슬롯을 반납해야 한다는 의미다.

즉 운항편수가 주 7회였다면 적어도 주 4회는 운항해야 한다는 것으로, 코로나19로 운항에 어려움이 많은 아시아 항공사 입장에서는 EU 내 슬롯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빈 비행기라도 띄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EU의 결정에 대해 주로 단거리이면서, 서서히 코로나19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는 역내 항공 시장만을 고려한 처사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역시 EU 집행위원회의 결정 이후, 곧바로 "항공업계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조치로 아시아 항공사에 부담이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IATA에 따르면, 7월 기준 장거리 항공 수요의 경우, 아시아는 2019년 수준의 평균 14%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유럽의 46%, 북미의 48%를 훨씬 밑도는 수치다.

IATA의 세계 공항 슬롯 책임자인 라라 모건은 "코로나19 여파로 수요가 없는 아시아 항공사에 평상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항공 컨설팅업체 CAPA의 피터 하비슨 명예회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이 같은 EU의 조치는 분명 무역전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항공사들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파산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단결된 모습을 보였으나 슬롯을 둘러싼 유럽과 아시아의 갈등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근본적인 차이를 다시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니얼 응 싱가포르 민간항공청(CAAS)의 항공운송국장은 공정한 경쟁을 위해 함무라비 법전의 탈리오 법칙과 같은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독일 공항의 슬롯을 관리하는 FLUKO의 르네 메이소콜루아 이사는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EU 규정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유럽 항공사에게 유사한 슬롯 규정을 적용할 것이라는 통보를 전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유럽 항공사 중 아시아 노선을 가장 많이 보유한 루프트한자도 EU의 엄격한 규정은 항공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반대의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글로벌 업계의 우려와 권고에도 불구하고, EU는 유럽 최대 저비용항공사(LCC) 라이언에어와 민영화로 수익 창출에 애를 쓰고 있는 다수의 역 내 공항들의 지지 속에 겨울 시즌 슬롯 운영 방침을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국제공항협의회(ACI) 유럽 지부의 에이단 플래너건은 "2019년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지만 점차 안정화되고 있다"며, EU 집행위의 결정을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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