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에서 이어집니다.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캡처

[AP신문=하민지 기자]

 

2. 무너지지 않는 (무너지면 안 되는) 펭수 '세계관'

 

펭수 코인 타려면 "눈치 챙겨"

사실 '세계관'보다는 '콘셉트'가 맞는 말일지 모른다. 펭수 캐릭터가 어떻게 설정됐는지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펭수에 한해서는 '콘셉트'보다는 '세계관'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현재 펭수를 '2D 캐릭터'로 인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살아있는 펭귄'으로 생각(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제작진들조차 남극에서 헤엄쳐 온 펭수를 지난 2월에 처음 만났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펭수 팬들 '펭클럽'도 마찬가지다. 펭수를 펭수로 보지 않고 정체를 파헤치려고 시도하는 이에게는 가차 없이 철퇴를 가한다. "눈치 챙겨"라는 펭수의 유행어로 혼내주거나 "펭수 속엔 펭수 내장이랑 뼈밖에 없어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수의사가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펭귄의 뼈가 나왔다.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캡처

이는 펭수 팬들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아이에게 산타가 없다고 말하면 눈치 없는 어른이 되는 것처럼, 펭수를 펭수가 아니라 다른 존재로 보려는 사람은 눈치 없는 사람이 된다.

(일례로, 펭수는 남극에서 한국으로 헤엄쳐 오다가 스위스에 들러 요들을 배워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스위스는 내륙국가인데 어떻게..."라고 말했다간 눈치 없는 '노잼' 어른 된다. 눈치 챙기자.)

펭수의 세계관과 '어른이'들의 동심(혹은 순수한 마음) 보호를 위해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펭수라는 캐릭터에 대한 팬덤의 충성도가 아주 높다는 뜻이다.

그러면 펭수와 컬래버하려는 셀럽과 광고주도 "눈치 챙겨"야 하는 건 당연하다. 

'펭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헤엄쳐 한국으로 온 10살 펭귄.' 이 콘셉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경우 셀럽과 광고주가 목표로 하는 타깃 수용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아까 말했듯, 팬덤의 충성도가 아주 높기 때문이다.

 

훌륭한 컬래버 사례: 보건복지부

펭수의 세계관을 잘 이용한 사례로는 보건복지부와 컬래버한 '세상에 나쁜 펭귄은 없다' 편을 들 수 있다. 지난달 15일에 공개된 영상이다.

신이 났다가도 금방 아무 의욕이 없어지는 펭수. 급기야 동물이 정서가 불안할 때 하는 울부짖는 행동, '하울링'을 하기도 한다.

제작진은 급히 전문가 두 분을 모신다. 펭귄 박사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두 사람은 펭수를 관찰한 영상을 보며 의견을 내놓는다.

두 전문가의 의견 말미에 자연스럽게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홍보된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보건복지부가 운영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별로 255개소가 있다. 우울, 불안, 알코올 중독 등 여러 정신질환을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다.

'세상에 나쁜 펭귄은 없다' 편은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에 게시된 140개 영상 중 4번째로 조회 수가 높다(12월 26일 오후 2시 30분 기준). 내용도 재미있고, 펭수 세계관을 지키며 컬래버했고, 유익한 정보까지 주는 영상이다.

 

나쁜 컬래버 사례: 포스코

펭수 세계관을 잘못 이용한 사례도 있다. 지난 13일에 공개된 '10살 펭귄 벌써 집 장만' 편이다. 포스코와 컬래버했다.

펭수는 EBS 지하 소품실에서 살고 있다. 소품실 2,000평이 모두 자신의 공간이라고 펭수는 말하지만, 펭수 이부자리는 소품실 구석에 조그맣게 펼쳐져 있다. 지하라 빛도 들지 않는다.

포스코는 펭수에게 집을 지어줬다. EBS 사옥 1층 로비 한가운데 새집이 생긴 펭수는 번개맨, 뿡뿡이 등 EBS 선배들을 초대해 집들이한다. 새집은 튼튼하고 친환경 소재로 지어 새집증후군도 없다는 점이 영상 내내 강조된다.

얼핏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컬래버 영상에 문제를 제기한 곳은 다름 아닌 환경 단체다. 포스코가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내뿜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포스코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국내 기업 중 1위다.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주원인 중 하나다. 펭수는 이전 영상들에서 지구온난화로 위기에 처한 고향(남극) 소식에 부모님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펭수는 환경 보호를 위해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도 한다.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캡처

컬래버는 이 점이 간과된 채 이뤄졌다. 펭수는 졸지에 남극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 펭귄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하는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7일 '남극의 파괴자 포스코는 펭수를 기만하지 마라'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에서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기업의 협찬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거기에 펭수까지 출연시킨 것은 무척 실망스럽다. EBS 측은 그동안 펭수가 기후변화로 피해를 받는 생물 종인 '펭귄'임을 거듭 확인해오지 않았던가"라며 이번 컬래버 영상을 비판했다.

 

'펭수 코인'에 잘 올라타려면?

'펭수 코인' 올라탄 기업·브랜드는 연일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수면 전문 브랜드 '시몬스'는 '펭수 크리스마스 캐럴'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이틀 만에 조회 수 100만 회가 임박했다. 의류 브랜드 '스파오'와 컬래버한 '펭수 파자마'는 출시 10분 만에 동났다.

전부 품절된 컬래버 제품. 스파오 홈페이지 캡처

이처럼 한 번 타면 '대박길' 걷는 펭수 코인, 너도나도 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펭수 코인 잘 타려면 처음부터 설계를 잘, 정확히 해야 한다. 앞선 포스코 사례처럼 펭수 세계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콘셉트만 대강 맞췄다가는 나쁜 컬래버 사례로 남게 될 수도 있다.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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