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스퀘어 공원과 타임스퀘어에 있는 코알라 인형들. 사진 인스타그램 @koalasofnyc
[AP신문=하민지 기자] 재앙이다. 어떤 종의 절반이 죄 없이 죽었으면 재앙이라고 불러야 한다.

호주 고유종인 코알라는 동·남부로 펼쳐진 유칼립투스 숲에서 유칼립투스만 먹고 사는, 하루에 20시간을 자며 느릿하게 유영하는 행복한 게으름뱅이들이었다.

이번 산불로 인해 코알라 중 절반은 죽고 없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은 화상이 심해 안락사되거나 매일을 상처와 싸우며 버티고 있다. 시민단체와 동물병원이 팔을 걷어붙이고 코알라의 상처를 치료하고 그들을 돌보고 있다.

화상 치료를 받고 있는 코알라 '안웬'. 사진 호주 코알라 병원 홈페이지
살아남은 코알라는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당장은 어려워 보인다. 한겨레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코알라가 살던 유칼립투스 숲은 이번 산불 지역과 80%가 겹친다. 게다가 숲은 다 타고 20%밖에 남지 않았다. 

코알라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말은 이래서 나왔다. 코알라 입장에서는 살던 곳과 먹이를 전부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뉴욕 곳곳에 코알라들이 나타났다

가로등, 나무, 전봇대는 물론 브루클린 다리 위, 센트럴 파크 구조물에도 매달려 있고 심지어 현대 미술관(MoMA)에서 작품을 감상하기도 한다.

사진 인스타그램 @koalasofnyc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진짜 코알라가 아니다. 인형들이다. 이 귀여운 친구들의 엉덩이에 달린 쪽지를 자세히 읽어 보자.

"10억 마리의 세계 유일의 야생동물들이 호주 산불로 죽었습니다."

"기부하기 위해 큐아르코드를 스캔하거나 koalasofnyc.com으로 방문해 주세요."

큐아르코드를 스캔하면 기부 사이트로 이동된다. 기부금은 호주 최대의 야생동물 구조·재활 자선단체 WIRES(Wildlife Information Rescue and Education Service)에 기부된다. 

모금 목표액은 15,000달러, 약 1,750만 원이다. 1월 22일 오후 3시 5분 기준, 모금액은 15,000달러를 넘겼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Go Fund Me'. 애초 목표액이 1만 달러였으나, 금세 달성돼서 15,000달러로 변경됐다. 수정된 목표액도 달성됐다. 사진 'Go Fund Me' 캡처

광고 회사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코알라 인형을 매달았다

MBC는 지난 15일, 한 시민단체가 벌인 일이라고 보도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뉴욕 곳곳에 코알라 인형을 매달고 기부금을 모은 곳은 광고 회사 커민스앤파트너스(Cummins&Partners)다.

호주에 본사를 둔 독립 광고 에이전시 커민스앤파트너스는 작년에 열린 스파이크스 아시아에서 올해의 독립 에이전시로 선정되고, 칸 국제 광고제에서는 세계적인 독립 에이전시 11위에 랭크된 광고 회사다.

사진 커민스앤파트너스 홈페이지 캡처
본사가 호주에 있다 보니 뉴욕 지사에 있는 직원 중에도 호주인이 많다. 이번 프로젝트의 리더인 다이앤 빌라비야는 지난 18일, 본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우리 직원 중 절반이 호주인이에요. 그래서 산불로 인한 호주 국민과 야생동물들의 피해에 대해 들었을 때 우리는 깊은 충격을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뉴욕 시민을 세계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연결하고 싶었다"

이 캠페인은 회의를 시작한 지 3일 만에 실행됐다. 아이디어는 커민스앤파트너스의 레이첼 미트라니가 냈다.

"지난 7일 화요일 아침, 우리는 한 팀으로서 화재에 피해 본 동물들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기부를 증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몇 가지 아이디어를 논의했어요.

우리 팀의 창의적인 멤버인 레이첼 미트라니가 '뉴욕의 코알라'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어요. 72시간 이내에 작품을 고안하고, 인스타그램을 개설하고, 모금 활동을 조직했어요.

3일 후인 금요일 새벽, 우리는 100마리의 코알라 인형을 도시 주변의 상징적인 지역에 매달았어요."

큐아르코드를 스캔 중인 뉴욕 시민. 사진 인스타그램 @koalasofnyc
빌라비야는 호주와 먼 거리에 사는 뉴욕 시민에게 호주의 사태를 연결하고 싶었다며 캠페인 배경을 설명했다.

"그곳에(호주에) 있지 않는 한, 산불의 영향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종종 어려워요.

우리는 뉴욕 시민들을 세계의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연결하고 싶었어요. 뉴욕으로 산불에 대한 감각을 가져오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기부금을 모으고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어요."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응원과 지지가 쏟아지고 있다

캠페인이 시작된 지 8일 만에 10,000달러, 약 1,160만 원이 모였다. 목표액은 15,000달러로 수정됐는데, 이 또한 달성했다. 빌라비야는 목표를 넘어서, 계속해서 기부금을 모금할 것이라고 말했다.

캠페인에 대한 호주인들과 뉴욕 시민의 반응도 뜨겁다. 커먼스앤파트너스는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며 인스타그램 '뉴욕의 코알라들(@koalasofnyc)' 계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누리꾼도 감동이라는 댓글을 달며 큰 호응을 보내는 중이다.

많은 호주인과 뉴욕 시민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이번 캠페인을 지지하고 있다.

 
 
 
 
 
 
 
 
 
 
 
 
 
 
 

Koalas of NYC(@koalasofnyc)님의 공유 게시물님,

"호주 국민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어요. 고통을 알아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메시지도 많이 받았어요. 

호주 국민이 우리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보고 뉴욕의 코알라들에게 사랑을 느낄 때, 그리고 이 어려운 시기에 미소 띤 코알라 인형들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을 볼 때 호주 국민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어요.

캠페인을 진행하며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도 만났어요. 한 여성은 코알라 꼬리표를 읽고 우리와 악수하며, 이렇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울었어요. 마음이 따뜻하면서 아팠어요."

 

코알라 철거되기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계속할 것"

코알라가 말없이 철거된 적도 있었다. 빌라비야는 그럼에도 이 캠페인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산불이 꺼질 때까지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불행히도 코알라 몇 마리는 뉴욕에서 철거됐어요. 누가 코알라들을 데려갔는지는 모릅니다.

캠페인은 계속됩니다. 저희 인스타그램에 계속 업데이트할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뉴욕 시민의) 경각심을 높일 거예요."

런던 버킹엄 궁전 근처 신호등에 매달려 있는 코알라 인형. 사진 인스타그램 @koalasofnyc
커민스앤파트너스는 지난 18일부터 영국 런던에서도 캠페인을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뉴욕의 코알라들(@koalasofnyc)로 접속하면 런던탑, 웨스트민스터 다리, 런던 지하철 안전봉에 매달린 코알라 인형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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