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권이민수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에 대한 공포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신종 코로나에 전염되는 것보다 그에 대한 공포에 전염되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와 함께 신종 코로나 감염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중국 우한시와 중국인을 향한 혐오와 차별도 확산되고 있다. 

1월 23일 올라온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에 69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1월 23일 올라온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원은 69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이 게시물 외에도 비슷한 내용의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상에서 중국인을 향한 가짜 뉴스와 음모론은 물론, 중국을 향한 비하적 표현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누리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만든 주범으로 언론이 거론된다. 

대표적인 언론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월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보도, 혐오 조장하는 언론들'이란 모니터 보고서를 공개했다.

중국 우한시에서 신종 코로나 감염 사태가 처음 벌어졌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우한을 비롯한 중국과 중국의 문화, 습관 등이 문제라며 비난하는 것은 차별과 혐오라고 보고서는 밝힌다.

보고서는 이런 차별과 혐오를 언론이 조장하고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자가 봤을 때 해당 보고서가 문제 삼는 것은 크게 네 가지였다. 

▲ WHO의 명명과 원칙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2019'가 아닌 '우한 폐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
▲ 중국의 문화 등을 이유로 중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것
▲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중국에 대한 공포를 키우는 것
▲ 중국인을 싸잡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로 딱지 붙이는 것

민주언론시민연합뿐 아니라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오마이뉴스 등도 언론의 혐오 조장에 대한 비판 기사를 냈다. 누리꾼 중에도 언론의 혐오 조장 기사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가 있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몇몇 문제의 기사는 삭제되거나 수정됐다. 그러나 언론의 혐오 조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1월 29일 올라온 기사 '[르포]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 수정 전의 모습이다. 사진 헤럴드경제 기사 캡처
헤럴드경제가 지난달 29일에 내보낸 기사 '[르포]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이 대표적이다. 이 기사는 나간 직후 여러 비판에 직면했다.

중국에 대한 혐오 정서가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누리꾼조차 이 기사는 지나치다고 봤다. 

Min* Kim

"이런 일은 대한민국 어디서나, 한국인에게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이*탁

"배제와 혐오를 부추기는 언론이 이 시대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다."

김*종

"수준 이하의 신문."

언론과 누리꾼의 비판이 일자 헤럴드경제는 5일 기사를 수정했다. 제목도 "[르포]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재판매 목적' 마스크 사재기 횡행"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수정된 기사를 확인해보니 '가래침'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만 삭제됐을 뿐 원본과 큰 차이는 없었다. 

5일 수정된 기사 "[르포]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재판매 목적' 마스크 사재기 횡행". 사진 헤럴드경제 캡처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언론 모니터를 담당 중인 조선희 활동가에게 수정된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른 상태로 수정한 것 같다"고 했다. "기저에 깔린 생각을 지적하는 것인데 반성이나 그에 대한 수정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 기사들이 삭제되고 수정되는 와중에 새롭게 올라오는 문제의 기사들도 있었다. 

지난달 31일, 연합뉴스는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는 교민들의 사진을 여러 장 보도했다. 이 보도 사진은 '사생활 침해'로 논란을 빚었다. 

3일 후, 연합뉴스는 문제의 보도 사진들을 모두 삭제했다. 

연합뉴스 31일 사진 기사(위)는 사생활 논란으로 현재 삭제됐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기사(아래)를 한국일보에서 9일 내보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일보 캡처
9일, 이번엔 한국일보에서 사진 기사를 보도했다. '[단독] 격리 열흘째… 옆방에 과자 건네는 우한 교민들'이란 제목의 기사는 바깥에서 교민들의 숙소를 클로즈업해 찍고 있었다. 이 기사는 문제의 연합뉴스 기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세계일보에서는 9일, '외국인 치료에 혈세 '줄줄'… 신종코로나 이후 건보료 불만 '부글부글''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첫 번째 국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였던 중국인 여성의 치료비를 정부가 부담하는 것을 다루고 있었다. 

정부에서 중국인의 치료비를 부담하는 것은 이례적이거나 아까운 세금을 낭비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조치로 감염병 확산을 사전에 막아 사회적 비용을 아끼기 위한 방안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주요 국가들도 동일하다.

이 사실은 세계일보 기사에서도 분명히 나와있었다. 기자는 이를 알고 있음에도 굳이 정부의 중국인 환자 치료비 부담을 언급한 것이다.

9일 올라온 '외국인 치료에 혈세 '줄줄'… 신종코로나 이후 건보료 불만 '부글부글'' 기사. 사진 세계일보 캡처

위와 같은 문제의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에게 AP신문은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어떻게 이와 같은 기사를 준비하게 됐는지, 또한 해당 기사가 중국 혐오를 조장하는 기사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서도 답변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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