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이키

[AP신문=하민지 기자] 멋있다. 아이돌 그룹 AOA 멤버 설현(FNC엔터테인먼트)이 모델로 나선 광고를 보자마자 한 말이다. 스포츠 웨어, 큰 재킷, 후드티, 운동화를 이렇게 멋지게 소화하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설현의 포즈와 미소, 어느 것 하나 건강하지 않은 게 없다. 설현은 저 옷과 신발 그대로 착용하고 금방이라도 어디든 나가 달리기를 할 것 같다. 그만큼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광고다.

설현은 이번 광고 촬영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광고 현장을 올리기도 했다. 자신이 봐도 자신의 복근이 멋지다며 이번 광고 촬영과 모델로서의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내가 아는 한 설현을 모델로 기용해 이렇게 건강한 아름다움을 드러낸 광고는 나이키가 처음인 듯하다. 

그동안 설현을 모델로 광고를 기획한 이들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고정된 아름다움만 설현을 통해 내보일 뿐이었다. 설현에게 이렇게 다양한 매력이 있는데도 말이다.

설현의 광고 수난사

2016년에 공개된 스포츠 브랜드 엘레쎄 광고다. 설현은 초록색 스포츠 웨어 상의에 얼룩무늬 레깅스를 입고 조깅을 한다. 조깅하는 설현 뒤로 남자 3명이 설현의 몸매를 품평한다. "장난 아니다", "연예인인 줄", "저 뒷모습, 헉"이라며 설현을 관전한다.

다른 버전의 광고도 비슷한 내용이다. 스포츠 웨어를 입고 조깅하는 설현을 보고 반한 남성이 설현을 무작정 뒤쫓아 간다. 

엘레쎄의 2016년 광고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광고하고자 하는 스포츠 웨어 제품의 설명은 없고, 남성이 운동하는 여성을 눈요깃거리 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해 공개된 국회의원 선거 광고다. 곧 총선을 앞두고 있으니 바로 전 총선 광고라는 뜻이다. 광고를 보면 '2016년 젠더 의식이 저정도였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성 혐오적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광고 속에서 설현은 유권자에게 투표를 독려한다. "언니"와 "오빠"를 부르며 아름다운 선택을 해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광고는 호명된 언니와 오빠를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이미지로 표현했다.

언니는 화장품은 꼼꼼하게 고르지만 투표에는 관심 없는 사람, 오빠는 스마트폰은 완벽하게 고르지만 투표에는 관심 없는 사람으로 묘사됐다. 뷰티는 여성의 것, 스마트 기기는 남성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투영돼 있다.

광고 속 설현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 때 광고 제작자는 설현이 섹시한 웨이브 댄스를 추게 했다. 그러고 나서 설현은 "오빠! 스마트폰 하나도 이렇게 퍼펙트하게 고르면서"라 이야기한다. 

웨이브 댄스는 투표 독려 광고에서는 불필요한 장면이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 광고의 타깃이 설현이 "오빠"라 부르는 남성인 점을 고려할 때, 웨이브 댄스 이미지 다음 "오빠"가 호명되는 광고 구성은 남성 시청자를 위한다는 이유로 여성 모델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사진 SK텔레콤

그리고 많은 화제가 됐던 SK텔레콤 광고다. 왼쪽 광고 이미지는 2015년 9월, SK텔레콤이 브로마이드 6만 장을 배포하고 거의 모든 SK텔레콤 매장에 입간판을 세웠던 이미지다.

또한 입소문이 '무보정 몸매', '뒤태' 등으로 나면서 입간판이 도난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인기가 많은 광고였다.

오른쪽 광고 이미지를 보고 SK텔레콤이 무엇을 광고하고자 하는지 추측해보자. 일단 여성 모델이 누워있다. 그리고 묶여 있다. 통신사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설명이 없으면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광고하고자 했던 건 'T로밍카드'였다. SK텔레콤은 오른쪽 광고 이미지에 "T로밍카드로 해외에서 데이터 꽁꽁 묶으세요"라는 문구를 썼다.

T로밍카드를 쓰면 해외에서 데이터를 낭비할 일이 없다는 메시지는 문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모델과 이미지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오직 수동적으로 묶인 여성 모델만 인지될 뿐이다.

2015년 SK텔레콤의 이 광고 이후로 광고 제작자들은 설현이라는 모델을 계속 비슷한 이미지로만 기용해 광고를 제작했다.

앞서 설명한 엘레쎄 광고와 총선 광고가 그 예 중 하나다. 클라우드, 지마켓, SK텔레콤 Sol, 스프라이트, 스파오 등 대부분의 브랜드가 설현의 몸매, 눈웃음과 애교 등만 강조했다.

"왜 계속 크롭티만 입으라고 하지? 다른 것도 해보고 싶은데…"

Q: 대중에게 설현을 각인시킨 건 늘씬한 뒷모습으로 손짓하는 등신대 광고였어요.

이 광고가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설현은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매혹적인 아이콘이 됐죠. 그걸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요? 

A: 처음엔 사람들이 절 알아준 계기라 마냥 신기하고 신났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계속 같은 모습만 원하시는 거예요. 너무너무 같은 것만요.

한동안 딜레마였어요. 왜 계속 크롭티만 입으라고 하지? 다른 것도 해보고 싶은데…. 물론 그것도 제 모습이지만, 저한텐 다른 모습도 많거든요.

GQ가 2018년 12월 설현을 인터뷰한 기사 내용이다. 광고계가 모델 설현을 통해 남성이 규정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이미지만 나타내자 설현도 서서히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사진 나이키
그리고 이번 나이키 광고가 등장했다. 위 광고들과 비교해서 보자. 남성이 규정한 여성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건강한 미소, 역동적인 포즈, 설현 자신도 만족하는 자신의 복근. 그 자체로 아름답고 에너지가 넘친다.

설현은 이번 광고를 찍으며 데이즈드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 스스로 다양한 설현을 알아가는 중이다. 스스로에게 평생 궁금한 사람이고 싶고 꾸준히 나 자신을 궁금해할 예정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도전은 내 의견을 갖고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대세에 휩쓸리거나 남들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늘 주체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

크롭티 말고 다양한 옷을 입고 다양한 매력을 지닌 설현. 크롭티만 입으라는 광고계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설현. 그런 광고 모델 설현을 앞으로도 응원하고 기대하며 지지한다.

저작권자 © AP신문 | 온라인뉴스미디어 에이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