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맥심모카골드

[AP신문=하민지 기자] 지난 8일, 동서식품의 커피 브랜드 맥심모카골드가 배우 공효진(매니지먼트 숲)을 모델로 한 레트로(복고풍) 인쇄 광고를 공개했습니다.

광고에서 모델은 복고풍 의상을 입고 '마호병'이라 불리던 맥심의 유명한 보온병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촬영한 현장을 포함해 전체적인 분위기가 복고풍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진 맥심모카골드

동서식품은 이번 광고를 공개하며, 16일에 '맥심 커피믹스 레트로 에디션' 15,000 박스를 한정판으로 판매한다고 합니다. 머그잔과 보온병도 함께 판매됩니다.

광고가 공개되고 며칠 후, 누리꾼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광고가 '다방 레지'를 연상시킨다는 것입니다. '레지'는 '아가씨'를 뜻하는 영어 단어 'Lady'가 변형된 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고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다방 레지'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묘사돼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커피 배달을 가는 다방 직원 전은하.
 

김석중에게 커피를 배달한 전은하.

다방 레지는 그동안 여러 콘텐츠에서 여성이 마호병에 담긴 커피와 커피잔을 보자기에 싸서 오토바이를 타고 커피 배달을 가는 모습으로 묘사돼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영화 '너는 내 운명(2005)'이 있습니다. 

주인공 전은하(전도연(매니지먼트 숲) 분)는 김석중(황정민(샘컴퍼니) 분)에게 오토바이를 타고 커피 배달을 가서 마호병에 담긴 커피를 제공합니다. 

사진 영화 '라디오스타'

영화 '라디오스타(2006)'와 단편 영화 '외박(2005)'에서도,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에서 최형배(하정우(워크하우스컴퍼니) 분)가 "살아있네"라는 대사를 말하며 다방 레지의 신체를 움켜쥐는 장면에서도 여성과 함께 마호병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다방 레지 캐릭터를 묘사할 때 여성과 마호병에 담긴 커피는 한 쌍처럼 한 화면에 등장하며 긴 시간 클리셰로 형성돼 왔습니다. 

착한 사람의 전형적 인물은 흥부, 나쁜 사람의 전형적 인물은 놀부인 것처럼 다방 레지 캐릭터에도 전형성이 형성됐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전형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닐 것입니다. 긴 시간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게 봐 온 모습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그것이 상투적이고 진부할 때, 우리는 클리셰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다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가 2006년에 발행한 논문에 따르면, 당시 연구 대상자들은 다방을 운영하는 데 부엌이 딸린 작은 공간, 차를 만들 재료, '아가씨'만 있으면 된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다방'은 음료를 판매하는 영업소의 의미가 아니라 '다방 아가씨를 배달하는 공간'이 됐다고 논문은 설명합니다. 

소위 '티켓을 끊는다'고 일컬어지는, 성매매가 포함된 '티켓 다방'과 차만 배달하는 '배달 다방'이 구분돼 있긴 하지만 논문은 두 다방의 경계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차를 배달해 마시는 남성 고객은 티켓 다방이든 배달 다방이든 상관없이 '다방 아가씨'에게 성적인 서비스를 기대하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다방은 '여성이 따라주는 커피가 맛있다'라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매매를 기반으로 번성해 왔습니다. 현재까지도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다방을 통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 누리꾼이 맥심모카골드 광고를 보고 "순간 다른 거 생각했다"며 다방 레지를 연상한 듯한 댓글을 댓글을 달자, 그의 친구가 "변태"라고 답하고 있다. 사진 맥심모카골드 페이스북

이런 한국 사회의 현실과 그를 반영해 클리셰를 형성해 온 미디어의 콘텐츠들. 실제로 한 누리꾼은 맥심의 이번 광고를 보고 '다른 생각'을 했다며, 광고에서 다방 레지를 연상하는 듯한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사실 여성과 마호병 자체가 광고에 등장한다는 게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마호병은 다방뿐 아니라 가정마다 구비해 놓고 애용했던 보온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여성 모델과 마호병이 아니라, 여러 이미지의 조합이 클리셰를 형성해 하나의 기호가 되고, 그 기호가 현재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와 연관 있는 것, 그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전문가들도 같은 지적을 합니다. 작년 12월, 서울YWCA에서 주최한 '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이냐구요?' 토론회에서 광고 속 여성의 고정 관념적 이미지에 대해 발표한 디자이너 우유니는 광고의 이미지에 대해 자세히 지적했습니다.

"빨간 몸통에 흰 뚜껑이라는 특정한 생김새를 한 마호병은 다방 커피 배달을 연상시키는 클리셰입니다.

마호병을 가지고 다방의 내부를 연상시키는 곳에 앉아 있는 장면과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다방 레지'의 이미지를 은밀히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이미지는) 모델이 예뻐 보이고 보온병이 갖고 싶다는 소비자의 반응이 나올 정도로,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비치도록 연출됐습니다.

성 착취 관행에 대한 비판 의식 없이 로맨틱하고 따스한 '추억'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때 그 시절'은 누구를 위한 추억이고 누구의 향수인지 의문입니다. 커피 배달의 탈을 쓴 성 착취 산업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티켓 다방' 등으로 불리며 아직도 현존하기 때문에 더욱 염려스럽습니다.

광고를 기획할 때 대부분 기존에 유통되는 이미지를 조사하고 참고해 방향성을 확인하고 결정하기 마련인데 '다방 레지' 이미지를 왜 간과했는지 의문입니다."

사진 맥심모카골드
 

2014년부터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분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서울YWCA의 김예리 여성참여팀 부장은 14일 오전, 기자와의 이메일을 통해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광고 문구나 복장, 모델의 자세 등에서 선정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김 부장은 그럼에도 불편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1900년대 중후반 당시 다방 레지는 주로 젊은 여성으로, 다방 간 경쟁이 치열했던 상황에서 여성을 성 상품화한 상술이었습니다.

또한 (다방 레지가) 커피를 배달하고 남성의 시중을 들며 때로 성을 파는 장면은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퇴폐적인 장면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당시 사용되던 맥심 보온병을 다방 레지가 사용하는 장면이 노출되면서, 보온병에도 일종의 상징이 덧입혔다고 보입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많은 사람이 광고를 보고 다방 레지를 자동으로 연상하고 있는 상황을 너무 과하다고만은 볼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민한 젠더감수성이 필요한 시대이니, 광고 기획 시 더 적극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될 만한 장면을 조정하는 노력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사진 맥심모카골드

동서식품은 그런 의도로 기획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동서식품 홍보실 관계자는 13일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런 의도로 기획한 건 아닙니다. 판촉물 패키지 중심으로 레트로로 기획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누리꾼의 반응을 봤습니다. 보온병이 문제라는 지적을 많이 봤는데, 보온병은 일반 가정집에서도 많이 사용했습니다. 냉온수기와 정수기가 없었던 때, 많은 이가 야외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보온병을 들고 나갔습니다. 그걸 표현한 것입니다. 많은 분이 오해를 좀 하신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맥심모카골드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는 광고의 내용을 지적하는 누리꾼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여러 누리꾼이 항의성 댓글을 달고 관리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댓글이 삭제되고 페이지에서 차단당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동서식품 홍보실 관계자는 이에 관해 "차단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맥심모카골드 페이스북 관리자는 14일 오전, 누리꾼의 항의성 댓글에 답하기 시작했습니다. 답변 내용은 13일 오후 기자와 통화했던 내용과 유사합니다.

또한 "최근 소비자로부터 마호병을 판촉물로 다시 달라는 요청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고, 이런 의견에서 모티브를 얻어 기획된 판촉물입니다. 화보의 의상과 배경, 소품도 당시 생활상을 현실감 있게 반영했습니다. 어떤 분께도 불쾌감을 드리려는 의도가 없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진 맥심모카골드

작년 6월, 배스킨라빈스가 여성 어린이를 모델로 내세운 광고가 어린이를 성 상품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때도 딸기와 우유가 함유된 아이스크림과 여성 어린이가 광고에 등장한 것 자체가 문제가 된 게 아니라, 여러 이미지들이 조합되며 성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연출이 문제였습니다.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클리셰는 우리의 일상에 너무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표현할 수도 있고, 잘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만큼 조금 더 예민하게 감각을 세워,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고정 관념이나 차별적인 내용은 없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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