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성소수자 지지 기업 광고, 해외는 넘치고 국내 기업은 0개

하민지 승인 2020.05.17 11:30 | 최종 수정 2020.05.17 19:56 의견 0
국내 첫 트렌스젠더 변호사인 박한희 변호사.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아이다호 데이 광고에 출연했다.

 

[AP신문=하민지 기자] 5월 17일은 유럽의회가 제정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이다. 1990년 5월 17일에 세계보건기구가 질병 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날을 기념하며 제정됐다.

성소수자는 한국 사회에서 늘 차별과 혐오에 직면해 있었지만 요즘 더욱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혐오 기사를 양산하는 언론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감염의 원인이 동성애라는 식으로 보도해 논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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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국은 성소수자에게 험지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광고를 만든 국내 기업은 한 곳도 없다. 

한국어로 된 광고 만든 국내 기업, 사실상 0곳

작년 7월에 오비맥주 카스가 서울 퀴어문화축제를 기념해 인쇄 광고를 선보이긴 했으나 카스는 국내 기업이 아니다. 2014년, 세계 최대 맥주 기업 AB인베브에 인수됐다. AB인베브 본사는 벨기에에 있다.

카스 맥주캔은 원래 파란색이다. 이 광고에서는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색으로 바뀌었다. 사진 카스


AB인베브는 그동안 젠더 문제와 관련된 광고를 여러 편 제작해 왔다. 2018년에는 여성이 겪는 가정 폭력 문제를 규탄하는 광고를 선보이기도 했다. 작년에 카스가 서울 퀴어문화축제 관련 광고를 선보인 것은 이 같은 경향의 연장선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오비맥주가 국내 기업은 아니긴 하지만 카스 광고는 한국어로 된 첫 번째 성소수자 지지 광고였고 카스가 국내에서 출발한 브랜드였기에 큰 화제가 됐다.

반면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성소수자 광고를 만들거나 성소수자를 향해 브랜드 홍보를 한 적이 있긴 하다.

광고는 현대자동차가 만들었다. 2018년에 선보인 올 뉴 싼타페 광고다. '모든 종류의 가족을 위해'라는 카피로 제작된 광고에는 레즈비언인 것으로 보이는 커플의 결혼식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광고는 독일 최대의 광고 대행사 융 폰 마트가 제작했다. 국내 TV에선 방영되지 않았다. 광고 포털 TVCF에서도 해외 광고로 분류돼 있다.

국내에서 방영된 같은 시리즈의 광고 카피는 '모든 종류의 가족을 위해'가 '모든 가족들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로 바뀌었다. 광고에는 어머니, 아버지,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이 나온다.

미국 뉴욕시 삼성837 마케팅 센터에서 열린 프라이드 플레이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경우 재작년 6월, 세계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축제인 미국 프라이드 위크 기간에 뉴욕시 삼성837 마케팅 센터에서 닷새간 성소수자를 위한 문화 행사를 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마케팅 센터 이름을 '프라이드 플레이스'로 바꾸고 갤럭시 S9 카메라로 찍은 사진 전시회, 삼성 기어 S3를 활용한 피트니스 세션 등을 열어 프라이드 위크 참여자에게 삼성전자의 스마트 기기를 홍보했다.

재작년 7월 2일, 삼성은 공식 홈페이지 뉴스룸에 "성소수자의 달을 축하하기 위해" 이 같은 홍보 활동을 진행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어로 된 성소수자 지지 광고는 외국계 기업이 만들고, 한국 기업은 외국에서 성소수자 지지 광고를 만들고 있다. 국내 기업이 한국어로 된 광고를 만든 사례는 사실상 0건이다. 

반면 해외 기업은 구글, 애플, 나이키, 아디다스, 스타벅스, 버거킹, 메리엇 호텔, 러쉬, 이케아 등 여러 대기업이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광고를 만들어 왔다.

아이다호 데이 기념 첫 광고는 성소수자 단체가 제작

성소수자 광고 불모지인 국내에서, 퀴어 인권 단체들이 결성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은 국내 최초로 영상 광고를 제작했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기념하는 광고다.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다'는 주제의 광고에는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인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변호사, 작년 5월에 결혼식을 올린 동성 부부 소주ㆍ오소리 활동가, 하늘 성소수자부모모임 대표 등이 출연했다. 이 외에도 광고 제작비를 후원한 517명의 사진이 광고 마지막 장면에 한꺼번에 등장한다.

오소리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14일 AP신문과의 통화에서 "코로나19 시국이라 집회가 어려워서 온라인으로 뭔가 해보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많은 성소수자의 얼굴을 드러내면서 (성소수자가) 우리의 일상에 있다, 함께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자 했다"며 광고 기획의 배경을 전했다.

지하철 광고 예시 이미지. 사진 무지개행동


무지개행동은 지하철 광고도 제작할 예정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상업 지역 지하철역에 한 달간 게재한다. 이를 위해 지난달부터 광고 제작비 후원을 받았다. 오 집행위원은 "목표액 800만 원을 다 모았다. 현재는 서울교통공사 심의를 받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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