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거리의 성교육, 독일 콘돔 광고 클라쓰

AP신문 승인 2020.06.13 08:00 | 최종 수정 2020.06.12 16:08 의견 1

"Benutzt Kondome."
"콘돔을 쓰세요."
"콘돔을 사용하세요."

 

[AP신문=이소연 객원 칼럼니스트] 독일 베를린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BZgA(Bundeszentrale für gesundheitliche Aufklärung 건강한 성교육을 위한 독일 연방제 본부)의 공익광고다.

남자와 여자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섹스를 즐기고 있는 모습의 광고다. 광고판 크기는 못해도 가로 2m, 세로 3m 정도다.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30년 내내 혼전순결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나로서는 독일 베를린의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길거리 광고판에 엄청 크게 붙어있는 광고 자체가 (이 광고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둘째 치고)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다.

내가 너무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걸까? 80년대에 태어나 현재 30대인 내가 이런 광고를 공공장소에서 볼 수 있고 이렇게 놀란다는 것에 스스로 생각이 많아졌다.

정신을 차리고 광고 메시지에 집중해 봤다. 광고에 쓰인 내용 자체에도 소위 '내숭'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이런 메시지를 대놓고 광고하는 판에 내용적으로 내숭을 떠는 건 무슨 소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선 광고 해석부터 해 보자.

Ab zum Arzt: 당장 병원으로.

 

여자는 치마에 손을 넣어 긁으며 어쩔 줄 몰라한다. 화장대 위에 놓여 있는 남자 사진은 깨져 있다. 전 남친이랑 헤어졌는데 아직도 아래가 가려워서 긁고 있는 모습이다.

Dein EX juckt dich noch immer?

ㆍ직역: 전 남친이 아직도 널 간지럽게 하니?

ㆍ의역: 전남친(과 했던 섹스) 때문에 아직도 간지럽니?

Benutzt Kondome: 콘돔을 써라.


소파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있었지만 이들에게 영화는 더 이상 메인이 아니다.

Wenn der Film zur Nebensache wird.

ㆍ직역: 영화가 중요하지 않아질 때

ㆍ의역: 더 이상 영화를 보는 게 아닐 때

Benutzt Kondome: 콘돔을 써라.


두 남자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섹스를 즐기고 있다. 배경을 보아하니 집인 것 같고 그 옆에는 콘돔 껍질이 떨어져 있다. 콘돔을 사용하는 게 아주 간단하며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Erstaunlich Einfach

ㆍ직역: 놀라울 정도로 간단한

ㆍ의역: (콘돔 쓰는 거) 진짜 간단해


이번엔 남자 둘이 사랑하는 모습이다. 남자 둘이 손을 잡고 걷거나 팔짱 끼고 가는 모습이 이제는 적응이 됐고 아무렇지 않아졌다. 베를린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1년 넘게 살았던 집은 게이가 많은 지역에 있기도 했고.

어쨌든 한국에서는 아직도 게이가 자신의 성정체성 자체를 당당히 공개하지 못하는 분위기인데 베를린에서는 콘돔을 쓰라고 말하는 걸 넘어서 동성 연애에서도 콘돔 사용을 잊지 말라는 광고를 하고 있다.

Heiße Nacht? Benutzt Kondome.

ㆍ의역: 독일어 번역: 뜨거운 밤? 콘돔 써.


처음에 이런 광고를 접했을 때는 충격받았지만 그 후에는 인지하고 인정하게 됐다. 그러고는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봤다. 한국의 성교육의 현주소는 어떤지에 대해서.

우선 내 세대에는 섹스, 성, 성기를 주제로 대화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다. 부모님께 성교육을 받은 기억은 (내가 잊은 게 아닌 이상) 없다.

학교에선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받았던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안 난다(내가 딴 짓을 한 건지). 혼전에 성관계했을 때를 전제로 해, '콘돔을 사용하는 방법'과 같은 실제적인 내용을 교육 받았던 적은 없다.

요즘 N번방 등 여러 성범죄 문제를 통해 성에 관해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많이 본다. 비단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다.

성에 대한 궁금함을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법이나 교육이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으로 "안돼, 안돼. 아직 어려서 몰라도 돼. 나중에 다 알게 돼"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배워서 알고 있어야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에이즈를 예방하거나 돕는 독일 단체의 페이지에서 캡처해 온 것이다.

Let's talk about Sex: 섹스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는 것.
Benutzt Kondome: 콘돔 써.

그림은 남녀가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지기 싫어) 키스를 하다가 둘 중의 한 명의 집으로 가려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Zu dir ? Oder zu mir?

ㆍ직역: 너네 집으로? 아니면 우리 집으로? 

ㆍ의역: 너네 집 갈까? 우리 집 갈래?

한국의 무조건 '쉬쉬하는 성교육 방식'이 절대 올바른 게 아니라는 걸 사회적으로 인식해야 할 때가 지났다.

그렇다고 독일의 성교육 방식은 무조건 옳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과 섹스에 대한 궁금함마저 외면하고 금기시하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베를린 공공 장소 광고판을 보면서 깨달았다.

가시 돋은 채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서도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층을 차지하고 있는 생리적 욕구에는 식욕, 배설욕, 성욕이 있다. 이 기본적인 욕구를 숨긴다면 밥은 하루에 3번이나 어찌 먹으며 화장실은 부끄러워서 어찌 가나 싶다. 

 

이소연 |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외국에서는 한국인의 시선으로 항상 '낯설게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 방식, 그 나라의 문화, 그 나라의 언어는 다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서 문화를 배제하고서는 효과적인 언어 습득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독일 베를린에서 2년 동안 살면서 봐온 문화 차이를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독일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문화, 한국어를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ㆍ이소연 칼럼니스트의 글 모음 주소 (https://brunch.co.kr/@korean#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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