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비평] ① 피임약 광고 변천사 - 대학생부터 아이돌까지

피임약 광고는 변화하는 여성관 반영
2006년 5월, 첫 TV 광고 이후 2019년 6월 콘돔이 등장하기까지

황지예 승인 2020.06.23 09:38 | 최종 수정 2020.06.24 12:31 의견 0
사진 동아제약 유튜브 캡처

 

[AP신문=황지예 기자] 요즘은 TV, 유튜브, 인터넷 배너 등에서 피임약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TV에서 피임약 광고가 가능해진 것은 방송광고심의규정 및 협찬고지규칙 개정안이 전면 개정된 2006년부터다. 그 이전까지는 지면 광고만 가능했다.

피임약 광고는 여성을 타깃으로 한 대표적인 광고 중 하나다. 피임약 TV 광고에 반영된 여성의 모습과 그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통해 시대마다 변화하는 여성관을 엿볼 수 있다.

▶ 첫 TV 광고, 서울대 재학생 등장··· '똑똑한 여성' 강조

가장 처음 TV에서 피임약 광고를 선보인 곳은 당시 한국오가논에서 유통하던 머시론이다. 2006년 5월부터 방송됐다.

머시론 '마이너스 피임론' 광고 캡처

 

당시 서울대 독어독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05학번 김소미 씨가 광고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김 씨는 "요즘 여자들 다 노력파잖아요. 공부, 사랑 둘 다요. 좋은 사랑하려면 진짜 똑똑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바보 같이 울고 짜고 그러는 거 다 싫어해요. 사랑에 빠져도 챙길 건 다 챙기잖아요"라고 말한다.

"경험은 없어도 전 그럴 것 같아요"라는 말도 덧붙인다.

명문대에 다니는 대학생을 모델로 내세우며 똑똑한 여성은 피임에 신경 쓴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광고는 지상파 방송이 아닌, 케이블TV 온스타일에서 방영됐다. 온스타일은 20ㆍ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패션 채널이다. 또한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은 강남, 신촌 극장가에서 송출되기도 했다.

첫 TV 피임 광고에 대학생이 직접 출연했다는 것부터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고 사회 분위기가 변하면서 여성 대학생의 당당한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성(性)을 개방적으로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또한 여성이 가진 임신의 부담을 '울고 짜고'라고 표현해 여성에게만 책임을 지운다는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 2010년대 초중반, 스무 살과 핑크빛 연애 강조

똑똑하고 당당한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웠던 2006년 머시론 광고와는 달리, 2010년대 초중반 머시론 광고는 스무 살의 풋풋함을 강조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머시론 광고 캡처

 

주로 남녀가 등장해 연애하는 모습을 보이며 연인 간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 피임약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광고 모델은 대부분 긴 생머리에 청순해 보이는 모습으로 연출됐고 광고에는 전반적으로 핑크색이 많이 사용된다.

이 광고는 '스무 살의 사랑은 걱정이 많다', '스무 살 사랑은 서툴다' 등 스무 살을 타깃으로 한 문구를 사용했는데 타깃으로 설정한 연령대가 너무 어리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청소년도 시청할 수 있는 TV 광고로 송출돼서 청소년에게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여론도 존재했다.

한편 해당 광고는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그리고 피임약을 연인 간 성관계에서 필요한 것으로만 인식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한동안 피임약 광고에서 이런 흐름이 지속됐다.

▶ 아이돌 스타의 등장, "난 내가 선택해"

사진 동아제약 유튜브 캡처

 

2017년 8월에 공개된 동아제약 마이보라 광고다. 당시 걸스데이로 활동하던 아이돌 유라를 모델로 기용해 화제가 됐다.

"난 내가 선택해. 사랑도 완벽해야 하니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사랑과 연애를 전면에 내세우던 기존 피임약 광고 트렌드와는 달리 여성의 주체적 '선택'에 방점을 찍었다.

이전까지 피임약 광고는 주로 유명하지 않은 신인 연예인이 모델로 출연해서 일반인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유명 여성 연예인이 모델로 등장했다는 건 그만큼 피임약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은 걸그룹 멤버로서 이미지가 손상된다고 비난하거나 성희롱적인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 이후 2018년 2월, 청와대 청원에 "부작용 많은 여성 피임약은 광고하고 콘돔 광고는 안 된다? 콘돔 사용 장려, 이제는 정부가 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사진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 캡처

 

청원을 올린 장모 씨는 "평소 영화관을 자주 가는 편이다. 영화 시작 전, 유명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여성 피임약 광고를 5번째 봤다. 하지만 저는 이제껏 한 번도 한국에서 콘돔 광고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21일간 같은 시간에 복용해야 하며 복통, 메스꺼움, 구토, 부정 출혈 등 많은 부작용을 수반하는 여성용 피임약이 아닌, 한 번의 사용으로 높은 피임 효과와 성병 예방(을 보장하고) 부작용이 없는 콘돔 사용을 국민의 올바른 성 지식과 건강한 성관계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부에서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국민 청원은 같은 해 3월 14일에 약 5만 3000명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으며 종료됐다.

이를 통해 피임을 온전히 여성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사회 분위기를 규탄하고 여성의 몸에 부작용을 일으키는 여성용 피임약이 아닌 콘돔 사용을 정부 차원에서 장려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누리꾼 사이에서 형성됐다는 걸 알 수 있다.

▶ 피임약 광고에 콘돔 등장

청원이 종료된 지 약 1년 후 2019년 6월에 센스데이가 여성과 남성이 모두 출연하는 피임약 광고를 선보였다. 센스데이는 유한양행이 머시론과 맺은 판매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 머시론과 같은 성분으로 내놓은 '복제약'이다.

유한양행은 2010년부터 2019년 5월까지 머시론의 국내 유통을 담당했다. 계약이 종료되고 바로 다음달인 6월에 센스데이를 출시했다. 

종근당이 유한양행의 뒤를 이어 새롭게 머시론의 수입 유통사가 되면서 피임약 업계 1위 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광고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

사진 센스데이 유튜브 캡처

 

'따로 또 같이'를 주제인 광고에는 서로 교제하는 사이인 여성과 남성이 등장한다. 여성은 약국에서 피임약을 사고 남성은 편의점에서 콘돔을 구매하며 함께 피임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누리꾼들은 이 광고가 피임이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 여성, 남성 모두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며 호평했다.

하지만 피임약은 직접 섭취해야 하는 의약품인 반면 콘돔은 그렇지 않아서 몸에 미치는 영향부터가 다른데 피임약 섭취와 콘돔 사용을 나란히 둬서 문제의 심각성을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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