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기자토론] 현대차 광고를 둘러싼 욱일기 논란

욱일기 연상은 지나친 비판
vs 욱일 형상마저 광고서 퇴출돼야

하민지ㆍ권이민수 승인 2020.06.26 14:32 | 최종 수정 2020.06.26 14:33 의견 0
모로코에 게시된 현대자동차 광고 이미지. 사진 MBN 캡처


[편집자 주] 지난 22일,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현대자동차 광고 이미지가 일본 '욱일기'를 연상시켜 논란이라는 기사가 연합뉴스에 보도됐습니다. 지난 3월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게시된 광고에는 여성과 현대차, 햇빛이 뻗어나가는 배경의 그림이 있습니다. 욱일기를 연상하게 한다는 요소는 바로 이 햇빛 그림이었습니다.

모로코에서 살고 있는 우리 국민이 항의해 현지 업체는 광고를 철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2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현지 업체 광고팀이 무늬의 의미를 모르고 사용한 점을 사과한다, 조만간 광고판을 철거하겠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의 광고판은 정말 욱일기를 연상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AP신문 편집국 취재 기자 간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광고 전문 기자인 두 기자의 상이한 의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이 기획은 누가 애국자고, 누가 친일파인지를 가리기 위해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광고 업계가 욱일기 논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두 기자의 서로 다른 입장을 읽어 보시고, 광고 업계에서 더 많은 토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욱일기와 관계없는 욱광 문양은 구별해야

[AP신문=권이민수 기자] 욱일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군기다.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한다. 

욱일기는 1945년,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육ㆍ해군이 해체되면서 사용이 중단됐다. 그러나 1954년 일본 자위대가 창설된 후 욱일기는 일본 자위대의 군기로 사용됐다.

광고가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는 논란은 대체로 광고 배경 등이 욱일기의 욱광 문양(아침 햇빛이 솟아오르는 문양)과 유사하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욱광 문양은 욱일기에만 사용되는 문양이 아니다. 북마케도니아의 국기, 티벳 국기, 구 소련의 공군기,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 군기 등 다양한 시대ㆍ지역의 깃발에서도 욱광 문양이 사용됐다. 

위부터 북마케도니아의 국기, 티벳국기, 구소련의 공군기. 사진 위키피디아


이처럼 욱광 문양은 전 세계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문양이다. 단순히 욱광 문양을 근거로 욱일기가 연상된다는 주장은 때로 지나치기도 하다.

욱광 문양이 욱일기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일본을 연상시키는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에 논란이 된 현대자동차 광고판의 경우 광고판에 일본을 연상시키는 요소는 따로 없다. 일본을 떠올리게 할 만한 사무라이나 기모노 같은 요소 없이 욱광 문양만으로 현대자동차 광고판이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는 주장은 무리한 주장일 수 있다.  

모로코 주재 한국 대사관은 "현재 모로코에는 현대자동차 지점이 따로 없어 현지 업체가 현대자동차 광고판을 만들고 있다. 광고팀이 무늬의 의미를 모르고 사용했다며 사과했다"고 밝혔다. 

현지 업체는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역사와 욱일기를 몰랐던 것 같다. 그럼 현대자동차 광고판의 욱광 문양은 일반적인 욱광 문양일까, 아니면 욱일기의 욱광 문양일까?

광고판의 디자인 시안을 미리 확인하지 못해 논란이 일어난 점은 분명 현대자동차의 잘못이다. 하지만 광고판이 욱일기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졌는데 우리가 굳이 욱일기로 해석할 이유도 딱히 없다.

국내 디자인 업계에도 욱일기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은 디자이너가 많다. 디자이너 이태은 씨는 지난해 한 광고물을 디자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광고 문구를 강조하기 위해 넣은 빛나는 문양을 두고 욱일기가 연상된다며 광고주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 씨는 "욱일기와 색도 다르고 일본과 관계도 없는 광고물이었는데 문제를 제기해서 당혹스러웠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때로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했다.  

디자이너 황도윤 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황 씨는 "욱일기가 연상된다고 해서 디자인을 여러 번 변형한 적이 많다. 의도가 없더라도 논란이 생긴다. 이제는 욱광 문양과 유사한 문양은 쓰기 전부터 고려하거나 아예 피하게 된다"고 했다.

광고 이미지에서 욱광 문양은 얼마나 자주 사용될까? 디자이너가 디자인 참고를 위해 자주 찾는다는 이미지 공유 SNS 핀터레스트를 찾았다. 핀터레스트에는 욱광 문양을 사용한 광고 이미지가 꽤 있었다. 

핀터레스트에서 발견한 욱광 문양 활용 광고 이미지. 사진 핀터레스트


디자인 업계가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해서 욱광 문양을 사용하는 게 아니다. 욱광 문양이 그만큼 자주 사용되는 문양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다.

과거 제국주의 당시, 일본이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 행한 학살과 전쟁 범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한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도 당연히 문제다. 누군가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광고를 만들고 욱일기나 욱광 문양을 담았다면 이도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욱광 문양을 한 모든 콘텐츠가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며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 제국주의를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제국주의를 미화하고 피해자를 다시 고통스럽게 하는 욱일기와 일반적인 욱광 문양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광고 업계는 욱일 형상마저 쓰지 말아야 한다

[AP신문=하민지 기자] 광고는 자본주의 최정점에 있다. 그런 광고가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해 터져 나온 제국주의의 상징을 광고에 활용하는 건 자본주의 아래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재현하는 것이다.

왼쪽은 2010년, 오른쪽은 2017년. 사진 유니클로


욱일기나 욱일 형상은 일본 브랜드 광고에서 자주 사용돼 왔다. 대표적으로 유니클로가 있다. 유니클로는 2010년, 욱일기 이미지가 들어간 티셔츠를 판매하고 이 티셔츠를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2017년에 제작한 할인 행사 광고에서는 아동 모델이 욱일기를 들고 있게 하기도 했다.

아사히 맥주도 여러 캔맥주 디자인에 욱일기를 활용했고, ABC마트는 다른 스포츠 브랜드가 욱일기를 사용해 만든 광고를 그대로 상영했다. 이때마다 우리 국민이 집단으로 항의를 해야 광고를 겨우 내려줬다.

현재 일본 정부는 도쿄 올림픽 때 관중이 욱일기를 흔들어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승인한 상황이다. 일본 외무성은 작년 11월, 다양한 언어로 된 보도자료를 공개하며 욱일 문양은 일본의 전통 문양이라고 강조했지만 욱일기가 전범기로 쓰였다는 설명은 없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일본 제국주의 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당한 여성은 아직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이때 일본군은 피해 여성의 몸에 욱일 형상을 강제로 문신하기도 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한 지 거의 100년이 다 돼 가지만 일본은 아직도 자국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폭력의 역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광고 업계가 그 역사의 상징을 활용하는 것은 폭력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 설명하며 '독점 자본주의'라고 불렀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해 터져 나온 것을 제국주의라 봤다. 실제로 일본을 포함한 대부분의 제국주의 국가가 여러 나라의 자본을 독점하기 위해 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하며 식민지 국가의 국민을 탄압했다.

상업 광고는 현대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다. 광고를 만드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론은 하나다. 시장을 독점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돈을 벌려면 소비자가 지갑을 열게 해야 한다. 그래서 광고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쓴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광고가 '독점 자본주의' 국가의 전범기를 활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현대는 그런 비상식적이고 반인륜적인 폭력을 거절해야 하는 시대다. 그러나 욱일기로 광고를 만드는 이들은 그런 무딘 감각과 안일한 태도로 폭력을 다시 눈앞에 펼치고 있다.

욱일기가 아니라 그냥 햇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욱일 형상도 안 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은근하게 끼워 맞춘 광고 속 이미지는 소비자를 현혹한다. 그런 광고가 제재된 사례가 있다.

다코타 패닝이 모델로 나선 향수 광고 화보. 사진 오로라


2011년, 영국 향수 브랜드 오로라는 당시 17세인 다코타 패닝을 모델로 발탁해 광고 화보를 촬영했다. 패닝은 원피스를 입고 향수를 다리 사이에 끼운 채 카메라를 지긋이 바라봤다.

얼핏 보면 야한 이미지를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이 광고는 아동을 성 상품화한다는 지적을 받고 모두 철거됐다. 여성 아동의 다리 사이에 꽃이 핀 듯한 이미지와 모델의 눈빛 등 은근한 이미지의 조합이 여성 아동을 성적 대상화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욱일 형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햇빛 이미지에 죄가 없다 하더라도 이미 그 이미지에는 폭력이라는 상징성이 생겨 버렸다. 일제가 전범기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폭력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규제하지 않으면 폭력은 소비자의 삶 속으로 은근히 파고들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폭력에 점점 무감해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현대자동차가 우리 기업이란 것이다. 우리 기업이라면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더 신경 썼어야 했다. 물론 전 세계의 광고 제작자가 세계 시민으로서 제국주의를 반대해야 하지만, 우리 기업이라면 더욱 예민한 태도로 광고를 만들어야 했다. 우리 기업이 우리 국민인 피해자를 외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광고에 쓰인 욱일 형상이 욱일기와 비슷한 줄 몰랐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광고 제작자가 게을렀다는 것을 증명한다. 모로코도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데 타국의 역사적 아픔을 모르고 광고를 만들었다는 것은 제작자로서 특히 반성해야 할 일이다.

광고 업계는 더욱 조심했으면 한다. 광고가 자본주의의 최정점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소비자를 끌어오겠다는 목적만을 달성하려고 폭력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자본을 독점하겠다는 목적만을 달성하려고 식민지 국가를 착취하는 제국주의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피해자는 아직도 살아있다. 그 피해자가 언제 어디서든 욱일기나 욱일 형상이 들어간 광고를 볼 수 있다. 소비자가 식민지 국민이었단 걸 상기시키고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면서까지 해야 하는 광고가 현대에 어떤 존재 가치가 있을까.

폐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윤리적 규범을 지켜야 하는 건 시대적 요구다. '돈이면 다 된다'는 말은 지나갔다. 소비자는 기업이 착하게 돈 벌길 바라고 있고 그런 기업에 마음을 연다. 광고 업계는 이 점을 잊지 말고 폭력의 형상을 원천 차단하는 데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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