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하민지 기자]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 중 하나가 싸움 구경하는 것이다. 힙합처럼 광고도 디스전이 재밌다.

디스전과 비방전은 다르다. 비방전은 정치인이 주로 벌인다. 막말이나 패륜, 혐오 표현이 동반되기도 한다. 광고 디스전은 크리에이티브가 매우 중요하다. 라이벌 브랜드가 별로라고 비방만 해서는 소비자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라이벌 브랜드의 약점을 은근하게 지적하면서 자사 브랜드의 차별화되는 강점을 이야기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국내 가전 브랜드를 대표하는 양대 기업이다. 두 라이벌 기업의 광고 디스전 역사는 올해로 10년째다. 지난 6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서로 신고했다가 서로 취하하기도 했다. 끝나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뉴트로 콘셉트로 맞붙었다.

10년 광고 디스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두 기업을 볼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가 빛나는 광고가 있는가 하면 잔뜩 화가 난 광고도 있다.

힙합 디스전만큼 시청자에게 재미를 안겨주는 라이벌 기업의 광고 디스전. 시간 순서대로 정리했다.

1라운드: 2011년
삼성전자 "하늘과 땅 차이"
LG전자 "보라! 누가 하늘이고 누가 땅인지"

삼성전자가 2011년에 공개한 인쇄 광고. TV를 보면서 인터넷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LG전자 인쇄 광고. 삼성전자 광고를 향한 반격으로 제작됐다. 사진 LG전자

1차전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시장에서 거의 사라진 3D TV를 두고 두 기업이 맞붙었다.

선공은 삼성전자가 했다. 배우 현빈을 모델로 발탁해 삼성스마트 TV 인쇄 광고를 선보이며 '하늘과 땅 차이'라는 표현을 썼다. LG전자 TV를 쓰는 소비자는 원숭이로 표현했다.

LG전자는 삼성전자의 선공에 반격하는 인쇄 광고를 내놨다. 삼성스마트 TV 모델은 배우 현빈이었는데, LG 시네마 3D TV 모델은 배우 원빈이었다. 모델 이름도 비슷하다.

카피는 '보라! 누가 하늘이고 누가 땅인지'다. LG전자는 미국 컨슈머 리포트 평가에서 LG 시네마 3D TV가 1위에 선정된 것을 근거로 삼성전자 광고에 맞대응했다.

2라운드: 2012년
삼성전자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

삼성전자 광고 중 한 장면. 현재는 삭제돼 원본은 볼 수 없다. TV 뉴스 영상 속 자료 화면으로 남아있다. 사진 스카이라이브

2차전은 2012년에 일어났다. 공격수는 삼성전자다. 당시 두 브랜드는 같은 시기에 대용량 냉장고를 출시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900리터 용량 냉장고 지펠을 출시했다고 밝히자마자 LG전자가 910리터 냉장고 디오스를 출시하며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고 밝혔다.

이후 삼성전자는 광고 하나를 유튜브에 공개했다. 제목은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이다. 삼성전자는 지펠과 디오스의 문짝을 뜯어 눕혀 놓고 용량이 얼마나 많이 차이 나는지 실험했다. 

지펠에는 삼성의 브랜드 컬러인 파란색 물을 넣고 디오스에는 LG의 브랜드 컬러인 빨간색 물을 넣어 용량 차이를 비교했다. 광고에서는 타사 냉장고가 디오스라고 밝히진 않았지만 색상을 통해 은근하게 드러냈다.

물만 넣어본 게 아니다. 캔커피, 참치캔 등 여러 식료품을 다양하게 넣어보며 지펠이 디오스보다 용량이 크다는 걸 보여줬다.

LG전자는 즉각 반발했다. 법원에 광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100억 원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삼성전자의 광고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생겼다는 이유다.

법원은 LG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전자가 이 광고를 전송하고 배포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광고에 나온 실험이 공인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손해배상의 경우 법원의 중재로 LG전자가 소를 취하했다.

3라운드: 2013년
삼성전자 "다음 갤럭시가 준비됐다"
LG전자 "옵티머스G는 지금 준비돼 있다"

두 브랜드는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도 글로벌하게 맞붙었다. 사진 LG전자

3차전은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판에서 벌어졌다. 공격은 LG전자가 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갤럭시 S4 출시를 앞두고 먼저 인쇄 광고를 내걸었다. 카피는 '다음 갤럭시가 준비됐다(BE READY 4 THE NEXT GALAXY)'이다. 갤럭시 S4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영어 for를 숫자 4로 표기했다.

그러자 LG전자는 삼성전자의 광고판 위에 광고를 내걸었다. 카피는 'LG 옵티머스G는 지금, 당신을 위해 여기에 준비돼 있다(LG Optimus G is here 4 you now!)'이다. 삼성전자 광고에 대응하기 위해 똑같이 for를 4로 표기했다.

왼쪽엔 흰색 배경에 검은색 글씨, 오른쪽엔 검은색 배경에 흰색 글씨인 것마저 패러디했다.

LG전자는 삼성전자가 먼저 상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연합인포맥스의 2013년 3월 보도에 따르면, LG전자 관계자는 "우리가 먼저 2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광고판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삼성이 노골적으로 바로 밑에 광고판을 설치했다. 상도에 어긋나는 행동에 우리도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4라운드: 2017년
LG전자, 노트 찢고 펜 부러뜨리고···
삼성전자 "LG전자, 잘 되길 바랍니다"

LG전자 V30 광고. 삼성을 연상케 하는 파란색, 갤럭시노트를 떠오르게 하는 노트와 펜이 인상적이다. 사진 LG전자

4차전 역시 스마트폰 戰이다. LG전자는 신제품 V30를 내놓으며 삼성전자 갤럭시노트를 디스하는 광고를 공개했다.

광고 속 인물은 "너와 헤어져야 할 이유가 생겼어"라고 노트에 적더니 노트를 찢고 내동댕이친다. 노트 커버는 삼성을 상징하는 파란색이다.

다른 버전의 광고에서는 광고 속 인물이 파란색 펜을 부러뜨린다. 갤럭시노트의 펜을 상징한다.

삼성전자는 LG전자의 앞날을 축복하는 여유를 보였다. 당시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 사장은 "같은 우리나라 기업으로서 LG전자가 신제품을 내고 글로벌 시장에서 진짜 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달리 말하면 아직 잘 안 됐다는 뜻도 된다.

5라운드: 2019년
삼성전자 "먼지 털면서 소음, 진동까지 키우세요?"

LG전자 트롬 스타일러를 디스하는 삼성전자 에어드레서 광고.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의류 관리기 브랜드로 '에어드레서'를, LG전자는 '트롬 스타일러'를 내놨다. 트롬 스타일러가 먼지를 털어준다는 기능을 강조하자 삼성은 이를 디스하는 광고를 내놨다.

'먼지 털면서 소음, 진동까지 키우세요?'라는 카피로 에어드레서는 소음과 진동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털어낸 미세먼지, 다른 데(스타일러 안에) 묻히세요?"라며 에어드레서에는 미세먼지 필터가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6라운드: 2019년
LG전자 "Q. LED TV는 왜 두꺼운 거죠?"
삼성전자 "TV 번인 현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삼성전자 QLED TV를 디스하는 LG전자 광고. 광고에서 성우가 일부러 'Q(큐)'를 강조해 읽는다. 사진 LG전자

서로 공정위 제소까지 했었던, 가장 뜨거웠던 디스전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삼성과 LG의 광고 디스전 중 가장 뛰어난 창의력을 확인할 수 있다.

선제공격은 LG전자가 했다. 광고는 Q&A(질문과 답)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성우가 "LED TV는 왜 두꺼운 거죠?"라고 물어보면 "백라이트가 필요한 LCD TV니까요"라고 답한다.

재밌는 것은 성우가 질문할 때 질문만 하는 게 아니라 'Q(큐)'를 강조해 발음한다는 것이다. 그럼 사실상 이렇게 들리게 된다. "QLED TV는 왜 두꺼운 거죠?"

QLED TV는 삼성전자가 주력으로 미는 TV 브랜드다. LG전자는 광고에서 삼성전자 TV는 백라이트가 필요한 LCD TV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8K(고해상도) TV가 아니라서 검은색 표현도 제대로 안 되고, 두께도 두껍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TV 번인 현상을 무기로 들고 와 LG전자를 디스하는 광고를 공개했다. TV 번인 현상은 방송사 로고, 자막 등의 잔상이 TV에 영구적으로 남는 현상을 일컫는다.

광고는 착시 효과로 TV 번인 현상을 설명했다. 시청자가 까만 배경 위 흰색 원을 오래 보게 한 후 갑자기 배경을 하얗게 만든다. 앞서 보고 있던 흰색 원은 까만색 원처럼 잔상이 남게 된다. 이런 착시 효과를 이용해 번인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공정위 신고는 LG전자가 먼저 했다. 삼성전자가 거짓 광고를 했다고 신고했다. LG전자는 삼성전자가 백라이트가 있는 LCD TV를 QLED TV로 광고한 건 거짓ㆍ과장 광고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바로 반격했다. LG전자가 Q&A 광고에서 QLED TV를 객관적인 근거 없이 부당하게 비방했다는 이유다.

그러다 올해 6월, 두 기업 모두 신고를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7라운드: 2020년
삼성전자 "뉴레트로, 별세계 갬성(감성)'
LG전자 "금성 에어-콘을 찾읍니다(찾습니다)'

삼성전자(위)와 LG전자(아래)의 뉴트로 광고 이미지. 사진 삼성전자, LG전자

마지막은 뉴트로 戰이다. 디스전은 아니고 신경전이라고 볼 수 있다. 공정위 신고를 사이좋게 취하한 두 기업이 공교롭게도 같은 기간에 뉴트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뉴레트로, 별세계 갬성'이라는 제목으로 삼성전자의 대표 제품에 관한 세대별 반응, 제품에 얽힌 소비자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LG전자는 에어컨 휘센 출시 20주년을 맞아 금성(골드스타) 에어컨에 얽힌 사연 5개를 선정해 휘센 에어컨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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