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하민지 기자] 지난 17일, CJ제일제당 즉석밥 브랜드 햇반은 가수 선미의 신곡 '보라빛 밤'을 '보라빛 밥'으로 바꿔, 햇반 흑미밥을 홍보하는 광고 이미지를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햇반이 보라빛 밤을 활용해 제작한 광고 이미지. 선미가 "저 부르셨어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이 이미지는 현재 삭제됐다. 사진 햇반

햇반은 선미가 보라빛 밤을 부를 때 취하는 손동작을 활용하고 보라색 조명까지 켜서 광고를 제작했다. 광고 이미지와 함께 "선미... 아니 흑미가 부릅니다. 보라빛 밥", "햇반 흑미밥 선물 받으실 가수 선미님 찾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누리꾼은 햇반이 선미의 노래와 춤을 무단 도용했다며 햇반을 비판했다. 더욱이 선미 본인이 "저 부르셨어요?"라는 댓글을 단 후, 햇반이 선미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햇반은 선미에게 "혹시라도 불편을 드린 것은 아닌지 먼저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콘텐츠(광고)에서 언급했 듯 햇반에서 선물을 보내드리고 싶은데요. 괜찮으시면 DM(다이렉트 메시지) 확인 부탁드립니다"라고 댓글을 달며 수습하려 했지만 여론은 돌아서지 않았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햇반이 올린 사과문. 사진 햇반

결국 햇반은 지난 22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햇반은 사과문에 "콘텐츠 소재는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다수 제공받았으며 이를 SNS에 빠르게 반영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미흡한 판단으로 사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햇반은 사과문에서 여러 소비자가 먼저 햇반 측에 이번 광고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소명했지만 무단 도용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소비자 사이에서 먼저 "이 스타가 이 브랜드 모델이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는 흔하다. 또한 인기가 많은 밈(인터넷에서 널리 유행하는 것)을 브랜드가 가져다 쓰는 사례도 많다.

그런데 햇반은 왜 무단 도용 비판에 직면했을까? 소비자의 호평을 받은 다른 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소비자가 기대하는 것 면밀히 살펴야

올해 상반기 트렌드를 이야기할 때 가수 비의 '깡'을 빼놓을 수가 없다. 소비자가 스스로 '1일 1깡'이라는 챌린지 문화를 형성하고 깡을 밈처럼 만들어서 널리 퍼뜨린 사례다.

농심에게 비를 광고 모델로 발탁해 달라고 요청하는 소비자의 댓글. 좋아요 수 1.1만 개가 넘었다.

깡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소비자 사이에서 "농심은 지금 당장 지훈이 형을 모델로 섭외해서 광고 찍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댓글은 좋아요 수 1만 개를 돌파했다.

농심은 소비자의 요청에 응답했다. 깡의 유머 코드를 활용한 광고 이미지를 농심 SNS에 올렸다. 소비자는 농심이 센스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농심은 깡 신드롬을 활용해 광고 이미지를 제작했다. 사진 농심

농심 관계자는 지난 27일 AP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광고는 비를 모델로 발탁하기 전에 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햇반과 상황이 비슷하다. 소비자의 요청이 먼저 있었고 그 요청에 응답해서 광고를 만들었는데 농심과 햇반은 왜 다른 평가를 받았을까.

일단 농심은 비의 사진을 가져다 쓰지 않고 소비자가 깡이라는 노래를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를 관찰해 광고 이미지를 제작했다. 소비자의 놀이 문화에 브랜드가 동참한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햇반은 보라빛 밤의 안무 동작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무단 도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일부 소비자는 보라빛 밤과 햇반 흑미밥을 연관 짓기도 했지만 깡처럼 신드롬으로 불릴 만큼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햇반이 보라빛 밤을 보라빛 밥으로 연결한 걸 소비자는 낯설 게 느낀 것이다.

롯데칠성 깨수깡은 깡을 패러디했다가 소비자에게 "막 가져다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 롯데칠성

햇반과 같은 사례는 또 있다. 롯데칠성은 지난 6월, 숙취 해소 음료 브랜드 깨수깡 광고 이미지를 만들면서 가수 비의 표정과 춤 동작을 패러디했다. 그때도 무단 도용 논란이 일었다. 소비자는 비의 허락은 받은 것이냐며 롯데칠성을 비판했다. 결국 롯데칠성은 햇반처럼 광고를 내리고 사과문을 올렸다.

광고 업계 관계자는 AP신문에 "소비자가 어떤 걸 기대하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거라고 그냥 가져다 썼는데 그게 소비자가 기대하는 것과 다르면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스타와의 접점 만들어야

코미디언 박미선은 '짤(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이미지) 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약했다. 박미선이 만든 유행어 중 대표적인 것은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나왔다. 박미선은 주인공 미달이의 밀린 방학 숙제를 도우며 "스토리는 내가 짤게. 글씨는 누가 쓸게?"라고 말했다.

박미선의 유행어와 캐리커쳐로 광고 이미지를 만든 명인만두. 사진 명인만두

이 유행어는 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브랜드에서 가져다 썼다. "술은 내가 먹을게. 정신은 누가 차릴래?(카스)", "만두는 내가 먹을게. 돈은 누가 낼래?(명인만두)", "할인은 내가 할게. 가입은 누가 할래?(CJ 헬로다이렉트)" 등 박미선의 유행어를 패러디한 수많은 광고가 쏟아졌다.

이 광고에는 항상 박미선의 캐리커처가 삽입됐다. 지켜보던 박미선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불만을 표시했다. "유행인 건 알겠는데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렇게 쓰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박미선은 초상권을 상업적 목적으로 쓴다며 불만을 표했다. 사진 박미선 인스타그램

이후 박미선의 유행어를 그냥 가져다 쓰는 브랜드를 향한 여론이 안 좋아졌다. "모델료를 지불하고 모델로 쓰시라고요", "돈도 많은 대기업이 진짜. 있는 것들이 더 하네"라며 비판했다.

이때 박미선을 모델로 발탁해 광고를 찍은 브랜드가 등장했다. 유한양행 유산균 브랜드 '엘레나'다. 박미선은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한 지 20년 만에 광고에서 자신의 유행어를 재현했다. "선물은 엘레나가 줄게. 댓글은 누가 달래?"라며 유행어도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자 소비자의 호평이 쏟아졌다. "캐리커처가 아니라 정당하게 광고 찍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미선님을 알아봐 준, 믿고 보는 유한양행 사랑합니다"라는 댓글을 달며 광고에 찬사를 보냈다.

앞서 이야기한 농심 또한 비를 광고 모델로 발탁하며 스타와의 접점을 만들었다. 소비자는 비가 새우깡 모델이 되길 바라던 게 이뤄진 것과 농심이 정당하게 모델료를 지불한 것에 환호했다.

햇반의 사례는 박미선 캐리커처와 유행어를 가져다 쓴 다른 브랜드 사례와 비슷하다. 스타와의 접점 없이 소비자 사이에서 유행되는 것을 활용하다가 결국 좋지 않은 여론이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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