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단체는 7일,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서울교통공사를 향해 항의했다. 사진 하민지 기자

[AP신문=하민지 기자] 서울교통공사가 국내 최초로 제작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 매년 5월 17일) 기념 지하철 광고 게시를 불허했다. 

40개 성소수자 인권 단체가 결성한 '성소수자차별 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은 지난 6일 보도 자료를 배포해 "심의 결과 통보 이후 진행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도 서울교통공사는 거부 이유, 심의 위원은 알려줄 수 없다고 하며, 심지어는 재심의 후 게시하더라도 민원이 발생하면 즉시 철거되며 환불도 되지 않는 통보까지 해왔다"고 밝혔다.

무지개행동은 7일 오전 11시,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광고가 게시될 때까지 항의할 것"이라 밝혔다.

국내 첫 성소수자 광고, 지하철 게시 거절
성소수자 단체 "차별금지법 필요성 보여주는 사례"

성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 예시 이미지.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무지개행동

지난 5월 11일, 무지개행동은 유튜브에서 영상 광고를 먼저 공개했다. 지하철에 게시하려던 광고는 영상 광고의 인쇄 광고 버전이다. 광고는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메인 카피로 구성돼 있다.

글씨 속에는 517명의 사진이 있다. 사진은 무지개행동이 '얼굴 되기'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통해 받았다. 517명의 사람들은 성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 제작을 응원하며 자신의 사진을 무지개행동에 보냈다.

관련 기사

[기획] 성소수자 지지 기업 광고, 해외는 넘치고 국내 기업은 0개

오소리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기자 회견에서 "자신의 사진을 보내준 사람들이 메시지도 함께 보내줬다. 광고가 지하철에 무사히 게재되길 바란다, 평등한 세상 함께 만들어가자, 더는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해 줬다. 성소수자 광고가 전혀 없는 한국 사회에서 지하철 광고에 관한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백 명의 열망을 서울교통공사가 깨부쉈다"고 말했다.

오 집행위원은 "서울교통공사는 국가사업을 수행하는 공공 기관이다.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공사에서 누가 어떤 기준으로 광고를 심의하는지 알 수 없다는 건 공공성이 심히 결여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서울교통공사는 심의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수백 명의 열망을 승인으로 응답해 달라. 성소수자 광고 게시 후 민원 들어올 게 두려운 것인가. 그렇다면 이번엔 차별 행위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얼마나 두려운지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

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는 "성소수자 광고 게시 불허는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서울교통공사를 향해 항의했다.

서울교통공사 "심의 기준대로 심의한 것"
"공사는 외부 전문가 의견 전달받은 것"
"사회적으로 민감한 광고, 어려운 문제"
"돈보다 중요한 건 시민의 불편함"

광고는 한 달간의 심의 끝에 '게시 불허'로 결정됐다. 상업 광고는 심의하는 데 3~5일 정도 걸리지만 의견 광고는 한 달 이상 걸린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의견 광고란 '개인과 조직체가 특정의 중요 사안 또는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 의견을 진술하는 광고'다.

서울교통공사 광고심의위원회는 지난 3월, 의견 광고 심의 기준(가이드라인, 체크리스트)을 마련했다.

▲ 정치인 이름, 얼굴, 이미지 등의 표현 또는 정치적 주의,주장,정책이 표출되어 있는가 
▲ 공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방해될 수 있는 광고 
▲ 성역할 고정관념 및 편견을 포함하고 있는가 
▲ 성차별이나 비하·혐오를 조장하는 표현이 있는가 
▲ 외모지상주의, 외모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이 있는가 
▲ 성별에 따라 폭력의 가·피해자를 구분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가 
▲ 피해자가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가 
▲ 차별 및 편견·혐오를 조장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가(인종·빈부·연령·장애 등 인권침해적 요소) 
▲ 특정 이념·종교·관점을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가 
▲ 의견이 대립하여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 광고주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은가 등의 심의 기준에 걸리는 광고는 게시가 금지된다.

또한 의견 광고는 서울교통공사가 심의하지 않는다. 외부 광고심의위원회 10인이 심의해 공사 측에 심의 결과를 통보한다. 절반인 5명 이상이 찬성해야 광고가 게시될 수 있다. 딱 5명만 찬성할 경우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위원장의 결정에 따른다.

지하철 광고 예시 이미지를 들고 기자 회견에 참석 중인 성소수자 단체 회원. 사진 하민지 기자

윤강재 서울교통공사 미디어실 보도팀 대리는 7일 AP신문과의 통화에서 "법, 인권, 여성 등 전문가로 구성된 외부 광고심의위원회 10인이 심의해 심의 결과를 공사 측에 전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성소수자 광고는 광고 금지 체크리스트 중 어디에 해당하나? 
▷특정 항목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긴 어렵다. 열 명의 전문 위원은 체크리스트를 토대로 심의한다. 독립적으로 심사하며 전문성이 있는 분들이다. 법, 인권, 여성 등 각 분야의 전문가다. 이분들이 판단한 결과 광고 게시가 불가능하다고 공사 측에 전달해 주셨다. 균형점을 찾기 위해 외부 위원을 둔 것이다. 외부 위원의 결정을 공사 측에서 이야기하긴 어렵다.

■ 광고가 게시되더라도 민원이 들어오면 철거되고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한 것은 원래 있는 규정인가?
▷ 공사가 통보한 내용에 불복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의 사항이 있으면 심의를 다시 신청하라고 무지개행동 측에 전달했다. 그런데 아직 재심의 요청이 들어온 게 없다. 민원이 들어오면 광고를 내릴 거고, 그때는 환불이 안 된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민원이 들어와서 광고를 내린 다른 사례는 있다.

■ 의견 광고를 게시하면 민원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나?
▷ 예측하기 어렵다. 민원은 누구나 제기할 수 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시민의 불편함이다.

■ 페미니즘 광고와 4ㆍ16해외연대의 세월호 추모 광고도 게시가 무산된 적이 있다. 의견 광고는 거절하는 추세인가?
▷ 우리도 당혹스럽다. 사회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사안이라 광고를 내도 혼나고 안 내도 혼난다. 여러 잡음이 생기는 게 참 어렵다(곤란하다).

■ 무기개행동은 7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보통 인권 관련 광고 게시가 거절될 경우 거절하면 안 된다고 시정 권고를 한다. 이번에도 같은 권고를 전달받으면 광고를 게시할 예정인가?
▷ 이후는 대답하기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 의견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지하철 광고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광고라 좀 다르다. 파급력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렵다. 인권위도 충분히 고민하실 것 같다. 잘못된 게 있으면 수정하겠지만 성소수자 광고를 게시할지 말지 지금 이야기하긴 어렵다.

의견 광고 금지했다가 다시 승인했다가
페미니즘 광고도 세월호 광고도 불허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년간 의견 광고를 두고 여러 입장을 번복해 왔다. 2018년 5월,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이 페미니즘 광고를 게시하려고 하자 서울교통공사는 "양성평등 광고는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며 거절했다.

논란이 일자 공사 측은 2018년 6월, 의견 광고를 아예 받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 당시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하철을 논란의 장으로 자꾸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지하철이 노이즈 마케팅 공간으로 활용돼서는 안 됩니다. 시민 모두가 편안한 공간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약 8개월 후인 2019년 3월, 공사는 의견 광고 게재를 허용하면서 구체적인 심의 기준을 마련했다. 공사 측은 외부 전문가가 심의 기준을 참고해 광고를 심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세월호 6주기] 해외 교민 세월호 광고, 해외 매체는 허용 국내는 불허?

그러나 지난 4월, 세월호 광고는 심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게시 불가 통보를 하고, 이번 성소수자 광고는 심의 기준대로 판단한 후 게시 불가 결정이 나왔지만 어떤 심의 기준을 참고했는지는 밝히지 않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지개행동은 온라인상에서 서울교통공사를 향한 항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사진 무지개행동

무지개행동은 광고가 게시될 때까지 광고 취지를 온라인 액션으로 이어나간다. 오소리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서울교통공사에 민원을 넣는 것과 자신의 사진을 본인 SNS에 올리며 서울교통공사에 항의하는 두 가지 방법의 온라인 액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AP신문 | 온라인뉴스미디어 에이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