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만에 다시 돌아온 LG텔레콤 캐릭터 홀맨. 사진 홀맨

홀맨은 메일 80바이트 에세이를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다. 사진 홀맨

[AP신문=하민지 기자] 지난달 1일, 추억의 캐릭터 홀맨이 예고도 없이 돌아왔다. 'holeman is back(홀맨이 돌아왔다)'라는 이름의 인스타그램이 개설된 것. 홀맨은 인스타에 매일 80바이트의 에세이를 쓰고 있다.

홀맨은 3주 후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90년대 인기 댄스 가수 김현정이 부른 노래의 뮤직비디오, 홀맨의 안무 영상 등이 올라와 있다.

홀맨이 왜 돌아왔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홀맨이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의 캐릭터였기 때문에 'LG유플러스가 뭘 하나?' 추측할 뿐이다.

지난 8일에는 엠넷과의 컬래버를 암시하는 영상이 올라와서 소비자가 '엠넷이 활용하는 캐릭터인가?' 추측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에 홀맨이 카카오 캐릭터 라이언 엉덩이를 차거나 "톡 까고 말할래"라는 가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카카오톡에 도전장을 내미는 새 메신저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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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왜 돌아왔는지 아직 정확히 알려진 것도 없는데, 소비자 반응이 벌써 심상치 않다. 팔로워는 15일 오후 5시 기준 5만 4천 명이다. 소비자는 여러 특수 기호로 한글을 대체하는 2000년대 초반 문자 감성으로 댓글을 달며 홀맨의 귀환에 환호를 보내고 있다.

한물간 옛 캐릭터가 '뉴트로'의 옷을 입고 다시 등장해 인기몰이를 한 건 홀맨이 처음은 아니다. 새 소주와 함께 돌아온 진로 두꺼비, '굿즈 완판'을 기록한 랄라 베어, "잘 있었어? 친구들을 기다렸어"라며 MZ세대 심금을 울리면서 돌아온 꿈돌이까지.

옛 캐릭터들의 컴백 마케팅, 왜 흥할까?

1. 죽은 캐릭터를 되살리는 세계관

마케팅 인사이트 전문지 캐릿의 지난달 18일 보도에 따르면, 소비자는 요즘 콘셉트에 과몰입하고 세계관에 열광한다.

예를 들어, 인기 유튜브 콘텐츠 '오늘부터 운동뚱'에 나오는 코미디언 김민경의 경우, 태어나 처음 해 보는 모든 종류의 운동을 다 잘한다. 하지만 김민경 본인은 자신이 진짜 잘하는 게 맞냐며, 잘 모르겠다고 의아해한다.

이런 김민경에게 시청자는 '민경버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버스'는 '우주'를 뜻하는 'universe(유니버스)'의 줄임말이다.

즉, '운동을 잘하는데 본인만 잘하는 걸 모른다'라는 세계관이 뭐든 다 잘하는 히어로라는 '민경버스'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이 캐릭터 덕에 시청자는 '오늘부터 운동뚱' 콘텐츠에 더 열광하게 됐다.

요즘 사랑받는 인기 캐릭터도 이런 탄탄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꿈돌이의 경우 어른이 된 어린이를 오래 기다렸다가 다시 등장했다는 세계관을 설정했다.

"안녕 친구들아. 나 기억하고 있니? 나는 꿈돌이야. 너희가 자라는 동안 나는 꽤 오래 여기서 기다렸어. 이제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서 흉물이라는 소리도 듣고 철거도 당했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친구들을) 다시 만날 거라고 믿고서 꾹 참고 기다렸어.

친구들아, 나도 이제 어른이 된 너희처럼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해. 마지막이 되더라도 괜찮아. 다시 한번 너희랑 같이 놀고 싶어."

돌아온 꿈돌이. 사진 카카오TV

누리꾼은 즉각 환호를 보냈다. "이런 마케팅하지 말라고. 나 눈물 난다고", "꿈돌아, 너무 보고 싶었어", "꿈돌이 절대 센터 해(꼭 메인 캐릭터가 돼서 사랑받아)"라는 댓글을 달며 돌아온 꿈돌이를 환영했다.

카카오TV 캐릭터 서바이벌 웹 예능 <내 꿈은 라이언>에서도 꿈돌이가 우승 후보로 거론될 만큼 누리꾼은 꿈돌이 세계관에 열광하는 중이다.

18년 만에 다시 돌아온 홀맨도 마찬가지다. 누리꾼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토리를 설정하고 돌아왔다.

"들어줘. 내가 왜 그동안 안 보였었냐면 말이지, 18년 전 비 오던 날, 비 피하려고 지하철 구석에서 충전 중이었거든? 근데 충전기가 비에 젖어서 고장 났던 거삼. 그렇게 방전됐는데 너무 구석이라 한동안 아무도 못 찾더라.

근데 누가 그새 나를 동묘로 옮겼어. 고물 취급 ㅜㅜ 그렇게 18년 동안 자다가 충전기가 나 충전해 줘서 일어났다. 그랬더니 세상이 너무 달라져 있었어."

동묘앞역에서 충전 중인 홀맨. 사진 홀맨

누리꾼은 "광고 보고 홀린 듯이 (인스타그램에) 들어오고 팔로우까지 했네. 감성 진짜 대단하다", "난 홀맨 잊지 않았어 단 한 번도", "난 그동안 서른넷이 됐어"라며 오래된 캐릭터에 공감하고 있다.

이렇듯 레트로 캐릭터가 컴백 마케팅을 할 땐 심금을 울리는 서사, 그로 인해 생겨난 탄탄한 세계관이 중요하다.

2. 무해한 귀여움

마케팅 인사이트 전문지 캐릿은 소비자가 '무해한 귀여움'을 좋아한다고 분석했다. 올해 초, 가수 양준일과 펭수가 불러일으키고, 무명 시절을 견딘 트로트 가수들이 확대한 '선한 영향력'이 캐릭터의 컴백 마케팅에도 적용된다는 뜻이다.

'선한 영향력'이 꼭 캐릭터가 착한 일을 하고 사회 공헌 활동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문제나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귀여움 그 자체만 잘 어필해도 무해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캐릭터의 무해함이 광고에서 강조되기도 한다. 오비라거는 올해로 마흔이 된 랄라베어를 전면에 내세워 뉴트로 마케팅에 주력했다.

두 사람의 싸움을 중재한 랄라베어. 웃는 게 부처님 같다. 사진 오비라거

지난 5월에 공개된 광고에서 랄라베어는 갈등을 중재하고 서로 화해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광고는 한국 누아르 영화에 나올 법한 남성들이 주먹다짐을 하려 하자, 랄라베어가 자신의 귀여움으로 갈등을 중재하고, 이런 부드러움을 오비라거를 마시면 느낄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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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무해함과 랄라베어가 마스코트였던 옛 두산베어스 팬의 추억 감성이 더해져, 올해 설에 출시된 랄라베어 굿즈는 완판 신화를 기록하기도 했다. 오비라거는 이에 힘입어 지난 7일, 랄라베어 굿즈 스토어를 오픈했다.

올해 60세가 된 노장 캐릭터 '진로 두꺼비'도 랄라베어와 같은 무해함을 무기로 내세운다.

두꺼비가 돌아온 건 작년 5월이다. 등장하자마자 소비자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너무 귀엽다", "굿즈 만들어주세요", "캐릭터 만든 부서에 상 줘야 합니다"라는 댓글을 달며 두꺼비의 컴백을 환영했다.

왜 이제 왔냐는 사람을 안아주는 두꺼비. 사진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는 작년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두꺼비가 등장하는 광고 6편을 제작했다. 광고 속 두꺼비는 다른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 앞에 조심스럽게 등장한다. 그들에게 진로 소주를 보여주고선 커다란 배를 통통 두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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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로 두꺼비에 환호를 보내는 소비자 대부분은 60년 전 두꺼비의 모습을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두껍 두껍"이란 말밖에 못 하는 캐릭터가 다른 소주를 비난하지 않고 자신이 새롭게 돌아왔으니 이 소주를 한번 마셔보라고 권하는 장면에 무해한 귀여움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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